김재수, 히말라야 14좌 완등…"고미영의 꿈 이뤘다"
김삿갓
2011.04.2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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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히말라야 14좌 완등…"고미영의 꿈 이뤘다"
2011.04.26 17:53 / 수정 : 2011.04.26 19:35
김 대장은 26일(현지시각) 밤 0시 20분 등반을 시작해 13시간 30분 만인 오후 1시 50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올랐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한국인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씨 등 4명을 포함, 전 세계에 20명이 조금 넘는다. 김 대장은 위성전화 통화에서 “등반 파트너였던 고미영씨의 꿈을 마침내 이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대장은 2007년 5월 에베레스트 등반 때부터 고 고미영씨의 등반파트너로 나서 2009년까지 히말라야 10개 봉우리를 함께 올랐다. 하지만 최단 기간 14좌 완등을 목표로 했던 고미영 대장은 2009년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김 대장은 고씨의 시신을 직접 수습했다.
김 대장에게 등산은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누나를 따라 부산 인근 한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본 운해(雲海)에 반했다는 김 대장은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1990년 처음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따라 히말라야 베이스캠프(5400km)에 갔을 때는 고소증으로 얼굴이 붓고 두통과 구토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는 고소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20km씩 달리며 체력을 다졌다. 이후 매년 히말라야에 올라 1년에 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히말라야는 넓고 크고 높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등반할 수 없는 곳이죠. 모험심과 열정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고, 정상에 올랐을 때 긍지와 보람도 큽니다. 히말라야는 내 삶이기도 합니다.”
고산등반 전문가인 김 대장의 꿈은 고산등반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유럽·미국·일본 등지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일반인들을 상대로 상업등반이 진행되고 있다. 김 대장은 “등산인구 1000만을 넘어선 현재 히말라야를 오르고 싶은 일반인들이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안내하는 학교가 필요합니다”고 말했다.
“산은 처음에는 제 친구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인생의 스승이었어요. 순간의 고통을 이겨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험악한 자연조건에서는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한걸음 물러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가르쳐주거든요.”
2011.04.26 17:53 / 수정 : 2011.04.26 19:35
- ▲ 김재수(51·코오롱스포츠) 대장 (사진右)과 산악인 故고미영 (사진左) /조선일보DB
한국인으로 5번째 완등
김재수(51·코오롱스포츠) 대장이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이 됐다. 등반 파트너였던 고(故) 고미영씨가 못다 이룬 14좌 완등의 꿈을 대신 이뤘다는 점에서 그에게 이번 등반 성공은 특별하다.김 대장은 26일(현지시각) 밤 0시 20분 등반을 시작해 13시간 30분 만인 오후 1시 50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올랐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한국인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씨 등 4명을 포함, 전 세계에 20명이 조금 넘는다. 김 대장은 위성전화 통화에서 “등반 파트너였던 고미영씨의 꿈을 마침내 이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대장은 2007년 5월 에베레스트 등반 때부터 고 고미영씨의 등반파트너로 나서 2009년까지 히말라야 10개 봉우리를 함께 올랐다. 하지만 최단 기간 14좌 완등을 목표로 했던 고미영 대장은 2009년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김 대장은 고씨의 시신을 직접 수습했다.
김 대장에게 등산은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누나를 따라 부산 인근 한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본 운해(雲海)에 반했다는 김 대장은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1990년 처음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따라 히말라야 베이스캠프(5400km)에 갔을 때는 고소증으로 얼굴이 붓고 두통과 구토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는 고소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20km씩 달리며 체력을 다졌다. 이후 매년 히말라야에 올라 1년에 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보냈다. “히말라야는 넓고 크고 높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등반할 수 없는 곳이죠. 모험심과 열정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고, 정상에 올랐을 때 긍지와 보람도 큽니다. 히말라야는 내 삶이기도 합니다.”
고산등반 전문가인 김 대장의 꿈은 고산등반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유럽·미국·일본 등지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일반인들을 상대로 상업등반이 진행되고 있다. 김 대장은 “등산인구 1000만을 넘어선 현재 히말라야를 오르고 싶은 일반인들이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안내하는 학교가 필요합니다”고 말했다.
“산은 처음에는 제 친구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인생의 스승이었어요. 순간의 고통을 이겨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험악한 자연조건에서는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한걸음 물러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가르쳐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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