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사람과 山 8월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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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후드(3429m)
대한산악연맹의 해외지부 재미대한산악연맹은 2009년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미주 산악인들의 만남의 장으로 명산순례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재미대산련의 명산순례는 산악활동을 통하여 재미 한인산악인들 간의 동서교류와 대동화합을 이끌어 가는 모체로 발전해 매년 그 호응의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금년에는 7년차 산행을 5월13일부터 17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미 북서부 오레곤 주 최고봉 Mt. Hood(11250피트, 3429미터)에서 가졌다. 이번 명산순례는 미주 한인산악인 42명과 재미연맹의 가맹단체인 이곳 토박이 오레곤한인 산악회 회원 여러분들이 함께했다. 마운틴 후드는 미 북서부 태평양 연안 오레곤 주 수도 포틀랜드에서 50마일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후드산은 1857년 7월11일 헨리 피톡 등 4명에게 초등 되었다. 한편 1866년 화산 분출을 하였던 후드산은 재분출 할 확률은 3~7%이라 추정한다. 이산이 소재한 캐스캐이드 산맥은 북미서부대륙을 남북으로 길게 가르는 락키산맥과는 별개로 북태평양 연안을 첨봉처럼 남북으로 뻗어 미북서부 태평양을 방파 하는 산맥이다. 오래 전 빙하작용과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캐스케이드 산맥은 미대륙의 제 3봉 레이니어(4392미터, 14410피트)와 1980년 화산 활동으로 400여미터나 낮아진 세인트 헬렌스(2549미터, 8363피트), 아담스산(3741미퍼, 12307피트), 샤스터(4317미터, 14179피트) 산 등이 이 산군에 속해있다. 특히 후드 산은 1500 여 미터 이상 돌기 되어 하얀 빙설 독립봉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편 오래 전 빙하시대에는 정상부 7~800 여 미터 기까이까지 빙하가 흐르며 만년설 밑에 만들어진 깊은 빙하계곡 덕분에 후드 산은 수림한계선이 1800 여 미터로 낮으며, 이때문인가? 이산에 소재한 팀버라인 스키장은 년 중 눈이 가장 오래 남아 미국 대륙 내에서는 여름스키장으로도 유명하다.
5월13일, 첫째 날, 미 전국 각지에서 이번 후드 산 원정을 위하여 42명이 오늘의 집합장소인 오레곤 주 포틀랜드 시에 있는 라마다 호텔로 삼삼오오 모였다. 오후 3시에는 재미대산련 허훈도회장의 주도로 상견례를 마치고, 곧 이어 이번 원정을 위하여 3주 전 답사를 다녀온 시애틀한인산악회 유동혁 등반대장으로부터 이번 산행 전체에 대한 개요와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특히 이미 하절기로 접어드는 계절로 낮 시간 동안은 눈에 발이 너무 빠져 스노우 슈즈를 준비 할 것을 주문한 유대장에게 적설 상태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5월14일, 둘째 날, 아침 8시 산행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고 팀버라인 랏지로 출발했다. 랏지에 도착하여 방 한 칸을 빌려 남은 짐을 데포 시켜 놓고 트레일 헤드가 있는 팀버라인 스키장으로 향했다. 짐을 재정비하고 떠날 준비를 마치자 배당 된 식량과 장비 등 짐이 예상보다 불어나 하중이 만만치 않다. 오전 10시 선두는 답사 산행을 다녀온 시애틀한인산악회가 후미는 LA설암산악회가 맡았다.트레일은 잠시 후 설원으로 들어선다. 좌측에선 스키 리프트가 줄줄이 올라가고 있었다. 설산은 따로 정해진 트레일이 없다. 한편에서는 스키어들이 스프링 스키를 즐기고 있어 우리는 스키 슬로프를 벗어 난 우측 안전지대를 골라 정상을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다행이 스노우 슈즈를 신어 눈에 심하게 빠지지는 않았다. 여름을 향한 날씨는 기온이 상승하자 물안개가 올라 거의 화이트 아웃 상태를 만들며 시계를 막는다. 또한 변덕스러운 날씨는 가끔씩 몰아치는 눈보라와 가스가 감싸고 있어 정상부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막영 할 야영장은 따로 지정 된 자리는 없다. 대강 내일 정상산행을 생각하여 약 2600여 미터 구릉 터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기로 되어 있었다. 중식은 각자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는 행동식이다. 산행 2시간이 지난 12시경 선두구룹은 2400여 미터의 고지를 지나고 있었다. 여기가 오늘의 깔닥구간 초입이다. 깔딱 설사면은 원추형 형태로 정상까지 뻗어 있지만, 여기서부터 오늘의 막영터 2600미터 고지까지는 약 1마일 여 거리에 약 200 미터 고도를 높여야한다. 1시 30분 지나 선두는 암반의 돌출로 약간 구릉진 곳을 찾아 야영터를 정했다. 순차로 도착한 각 지역산악회 단위 별로 비탈진 경사를 고르며 막영터를 다지고나자 총 14동의 텐트가 들어섰다. 날씨는 늦은 오후가 되어도 계속 눈바람이 그치질 않아 내일을 걱정시킨다. 흐린 날씨는 1시간 일찍이 어둠의 장막을 내렸다. 조별 취사를 마치자 유동혁 대장은 내일 정상산행은 4시 출발예정이라며 3시 기상하여 만반의 준비를 요청했다.
5월 15일, 세째날, 정상을 오르는 날이다. 어제의 산행이 피곤했는지 몇 시간은 깊은 숙면을 했다. 고산에선 일어나면 밖에 천기가 가장 궁금하다. 다행이 텐트 밖은 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해졌다. 주변은 선후의 순서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새벽 3시경 일어들나 부산하다. 여기저기서 버너가 불꽃을 터트리는 소리가 여명을 재촉한다. 마실 물을 준비하고, 뜨끈한 차로 목을 티우고, 드라이 푸드 등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각 텐트 별로 분주하다. 일찍이 설쳤음에도 출발시간은 예정을 45분이 지나서야 시애틀 선발대가 출발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녘의 여명을 보며 하네스와 크렘폰, 헬멧, 피켈 등 기본 개인장비를 착용하고 준비 된 조 별로 선발대를 따랐다. 경사가 가팔라진 설사면은 밑에서 보면 한구비씩 구릉져 약간의 쉼 터가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올라 보면 쉴자리가 여의치 않다. 벌써 저 아래 꼬물꼬물 보이는 우리의 텐트군락은 이미 콩알 만큼 아련하다. 50여 분 올라가서야 처음으로 여러 명이 함께 크게 쉴 수 있는 구릉 굽이턱터를 만난다. 여기서 부터는 지난 분화구에서 날려운 유황냄새가 화산의 잔재를 느끼게 한다. 설사면은 잠시 휴식 터를 제공하고 정상부가 가까워 진 만큼 더 가파러졌다. 더구나 설릉의 상단은 우측으로 급한 급경사면을 횡단하며 주의를 상기시킨다. 여기가 바로 돼지등판처럼 가파르다 하여 ‘호즈백(Hogsback)'이라 명명 된 곳이다. 호즈백구릉 상단에 오르면 구린 듯한 유황냄새는 점점 짙어지고, 여기저기 구릉 아래는 유황가스의 실체가 기온의 차이로 아롱져 시야에 들어온다. 지속적으로 뿜어 나오는 유황가스의 열기는 주변 만년설을 녹여 하얀 설원에 유일하게 황토를 들어내고 있었다. 설면은 아래 유황가스 분출 황토지대까지는 약간 내려가다가 다시 가파르게 올라간다. 마지막 정상 관문인 펄 게이트까지는 대략 푹 100~150여 미터에 길이250~300여 미터의 대형 슬래브의 설사면이 막아선다. 이 설사면에는 일명 ’베르크슈런트(Bergshrund)'라는 빙하 최상단의 크레바스가 있다. 이곳이2002년 5월 30일 구조를 나섰던 헬기가 난기류로 추락하는 등 큰 사고가 났던 곳으로 내션날 지오그레픽에서 당시의 사고를 영상으로 재현하여 널리 알려진 곳이다. 후미를 따르던 나는 처음으로 설면 상단 펄 게이트로 막 들어서는 선발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올라가 보니 선두와는 약 한시간의 격차였다. 설면 등반루트는 2시 방향으로 100여 미터 직등을 하다가 이 지점에서 펄 게이트 하단을 향해 우측 2시 방향상단으로 트레버스를 하였다. 이곳에 시애틀 산악회 이경은 여성대원이 40미터 거리의 픽스 로프를 설치했다. 혹시나 지난 ‘베르크슈런트 크레바스’ 악몽의 만약을 대비했다. 픽스 로프를 벗어나 30도 고도를 높여 50여 미터 가면 펄 게이트 입구에 도달한다. 진주 조개가 살짝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펄 게이트 설면은 50~60도 경사에 폭 4~5미터, 높이 20여 미터로 이번 등반의 크럭스 코스다. 선두는 이곳에 두 번째 픽스 로프를 설치했다. 이 진주조개의 문은 정상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지리산 천왕봉의 통천문과 느낌이 비슷하다. 조개의 관문에 올라서면 정상은 30여 미터 전방에 2시 방향으로 바로 보인다. 정상까지는 능선길로 완만하다. 정상에 서면 북쪽 좌측으로부터 캐스캐이드 산맥의 명산 세인트 헬렌스, 레이니어, 아담스 등의 하얀 만년설 삿갓 봉우리들이 차례로 한눈에 관망된다. 며칠 동안 계속 궃었던 날씨는 이날 2500미터에서 정상까지는 활짝 개어 오전 8시 30분부터 선발대를 필두로 10시까지 총 35명이 정상을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기분 좋게 정상을 오른 등반대는 곧바로 베이스캠프를 철수하여 팀버라인 스키장 트레일 헤드라인까지 하산을 했다. 오후 5시경 팀버라인 랏지에 도착하자 급변한 날씨는 비바람을 몰아친다. 비바람을 바라보며 안전산행을 마친 제 7차 재미대산련의 후드산 명산순례 등반대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날 저녁은 오레곤한인산악회에서 준비한 저녁만찬을 즐기며 고진감래한 악우의 정을 나누었다.
5월 16일, 넷째 날, 어제 좋은 날씨 덕택에 예비일 하루가 남았다. 오레곤한인산악회는 오늘 인근 스미스 락(Smith Rock) 주립공원을 추천하여 관광 겸 가벼운 하이킹을 하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스미스 락 주립공원은 오레곤 주의 락 클라이밍의 메카 같은 곳이다. 사막 같이 건조한 기후에 전장 2마일에 걸쳐 우뚝 솟은 암벽은 각 루트마다 수많은 클라이머들이 암등을 즐기고 있었다. 미 서부는 2시간 거리에 만년 설산도 있고 화강 암봉이 함께 공존하는 산 사람들에게는 축복의 땅이었다.
5월 17일, 다섯째 날, 지난 닷새간의 석별의 정을 나누고 2015년 재미대한산악연맹 명산순례를 마쳤다.
내가 경험한 2015년 명산순례는 논어의 수장 세구절의 테마풀이 같았다.
學而時習之! 산을 배우고 익히고
有朋自遠方來! 산을 따라 멀리서 모이고
人不知而不慍! 속세를 잊으니 화 낼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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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현수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