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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들 이야기*

이만호
2004.12.21 02:11 1,78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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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몇몇 친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전날 밤 미국 TV방송국에서 산악영화를 하였는데 무척 감동적이었단다. 나는 그 프로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이야기 줄거리를 들어보니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쟈일(독-seil, 영-rope) 절단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같았다.

이 사건은 1985년 남미 페루의 안데스 산맥 중 와이와시 산 군(Cordillera Huayhuash)에 있는 시울라 그란데(siula Grande 21000Ft.) 서 벽을 초 등정하고 내려오던 영국의 두 젊은 산악인의 처절한 생존 이야기다. 당시 등반과 조난 상황을 쓴 Touching the Void(한국어 번역/정광식-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였는데, 2004년 난 꼭 살아 돌아간다 로 개제)의 저자이자 조난 당사자였던 조 심슨(Joe Simpson)은 하산 도중 오른쪽 다리의 무릎관절이 부러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의 등반파트너, 싸이먼 예이츠(Simon Yates)가 쟈일 두 개를 이어서 수직 벽을 두레박처럼 내려보내던 조가 이마가 튀어 나온 오버 행(Overhang)바위 아래로 떨어지면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날은 어두워 지형지물 확인도 어려웠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손은 모두 동상에 걸려 힘을 쓸 수 도 없었다. 며칠간 충분히 먹고 마시지도 못해 탈진 탈수 상태로 두 시간 여를 버티는 동안 싸이몬을 받쳐주던 어설픈 눈 턱이 무너지며 확보자의 몸도 밀려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냥 버티면 둘 다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싸이몬은 45미터의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친구와 연결된 팽팽한 줄을 칼로 자른다. 그 후 혼자 살아 남은 죄책감과 절망에 떨며 눈 구덩이에서 밤을 새운 싸이몬은 베이스 캠프로 내려와 조 심슨의 부모님께 전할 소지품을 제외한 옷가지를 불태워 없앤다. 그가 죽은 줄 믿었기 때문에…..그러나 30여 미터를 추락한 조는 크레바스(얼음 균열)속에서 몸은 망가졌지만 의식을 되찾는다. 그 후 조는 3일 낮 밤을 한 다리와 두 팔로 초인적인 사투를 벌리며 싸이몬에게 짐승처럼 기어서 돌아 온다. 그날 텐트 안에서 쟈일을 잘랐던 빨간 자루의 칼로 자신의 바지를 찢어 시커멓게 죽은 다리를 쳐다보며 흐느끼는 싸이몬에게 조는 가물가물 꺼져가는 의식으로 말한다. “고마워, 넌 날 살린 거야 알아? 너한테는 그 밤이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난 널 비난하지 않아, 달리 방법이 없었어. 나는 그걸 이해하고, 왜 너는 내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알아, 넌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어, 고마워” 그 후 조는 6번의 수술과 심리치료를 받는 동안 싸이몬은 쟈일 절단 윤리성에 대한 뜨거운 논쟁에 휘말린다. 이에 조는 사람들의 이러 쿵 저러쿵하는 흥미와 가혹한 비난에서 싸이먼을 보호하기 위하여 “싸이먼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대신”한다는 헌정사와 함께 상세한 등반기록 책을 쓰게 되었고, 조난상황 부분은 생사입판의 기로에서 등반파트너의 산우애山友愛와 인간적인 갈등을 각각 1인칭을 써서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02년도에 영화 촬영팀과 그 산을 다시 찾은 둘은 카메라 인터뷰에서 당시의 악몽을 새기며 흐느껴 울었다.

필자도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간 수많은 산악인들이 거대한 대자연과 맞선 극한상황에서 펼친 수 많은 휴먼 드라마들이 새삼 상기되었다. 쟈일 절단사건은 한국 히말라야 원정 팀에서도 있었다. 앞의 영국 산악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다. 1981년 악우회岳友會라는 산악회의 파키스탄에 있는 카라코람히말라야 바인타브락 산의 정상직하에서 등정을 포기하고 필사적인 하산을 감행하던 두 대원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인 이정대 대원의 아이젠(쇠 발톱이 달린 미끄럼 방지용으로 등산화에 덧대는 기구)이 벗겨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려갔다. 아이젠 없는 빙설상의 보행은 추락이다. 할 수 없이 둘은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픽켈로 얼음을 깎아 발판을 만들며 하산하였다. 둘은 안다. 많은 시간과 체력이 소모되는 스텝컷팅 방법으론 그 길고 위험하게 경사진 하산을 마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곧 동반자살행위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젠 잃은 파트너를 위하여 스텝 만들기에 몰두하던 유한규 대원의 쟈일이 느슨하여 당겨보니 그 끝에 매어 있어야 할 이정대 대원이 없어졌다. 자기가 추락하면 같이 떨어져 죽을 동료를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쟈일을 풀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시 이민 와 미국에 살고 있던 필자는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그 숭고한 희생정신에 가슴 저릿한 감동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이렇듯 산은 지구의 일부이지만 하나의 다른 세계다.
실정법을 초월한 자연의 본성을 가진 산악인들이 세운 신비한 왕국이다.
그 왕국의 산민山民들은 머리로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산다.
도시에서 더하기 빼기만 하던 사람도 산에선 곱하기 나누기도 한다.
사람이나 자연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그렇게 살아야
사람이나 자연을 위한 희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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