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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왜곡과 민족공조

늘이네
2004.08.18 20:37 1,66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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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역사학 교수)의 글을 올림니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한중간에 역사쟁점에서 나아가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판이다.
나 말고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대책을 내놓고 있으므로 나까지 나서서 뭐라고 하는 것은 공해를 더하는 일 밖에 안될 것이므로 입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리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또다른 당사자인(정확히 표현하자면 바로 당사자이자 문제의 원인 제공자에 해당하는) 북한과 '모든 것을 뛰어넘는'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양보를 바탕으로 한' "민족공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을 모색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서 몇 줄 적는다.

고조선은 기원전 24세기에 평양에서 건국되었고, 단군은 실재인물이고 ,그의 무덤이 평양 부근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원후 4세기경에 해당하는 고구려 무덤 하나를 발굴하고 개건하여 '단군릉'이라고 외치는 당당한 '자주와 주체의 조선'과 무얼 공조할 일이 있는가?

고구려정통론을 내세우면서 국내성에 있던 동명왕의 무덤을 고구려인들이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옮겨왔으며 동명왕의 능이 평양에 있다고 주장하는 멋진 '고구려의 후예'들과 무얼 공조하자는 것인가?

현재 고조선의 영역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였는지, 어떤 수준의 국가였는지, 근거지가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유물과 유적, 각종 사료, 정황증거 등등을 종합하여 제시되는 견해를 보면,
중원이나 만주보다는 약간 늦은 시기에 평양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며 영역이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
요서의 대릉하일대에서 출발하여 상당한 영역을 확보하였으나 연나라와 충돌하면서 중심세력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평양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주장.
요동지역에 터전을 두고 오랫동안 유지되었을 것이라는 설 등
몇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기원전 11세기경 요서 대릉하 일원에서 시작하여 상당한 영역을 확보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1960년대 북한에서 먼저 제기되어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쳐 그래도 합리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 아침에 그동안의 모든 주장을 다 엎어 버리고 평양에서 기원전 24세기경에 시작하였으며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다고 밑도 끝도 없이 그저 외쳐대고만 있으니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렇게 평양중심설만을 강조하고 내세우다 보니 고조선이 만주와 관련이 있는 국가였는가에 대한 연구나 설명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저 평양만 민족의 고향이고 세계문명의 발상지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그 말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면서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스스로 감격해 하는 이들과 무얼 공조한단 말인가.

압록강변 만주에서 시작하여 동북과 서쪽으로 영역을 확보하였고 이어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광대할 뿐 아니라 생활여건 역시 좋은 터전을 가지게 된 고구려가 성장할 때에 지금의 중국인들은 그 지역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다. 한족이 세운 국가들과 충돌과정에서 고구려는 멸망하였지만 그 뿌리는 그대로 발해로 이어졌고 고려로 계승되었다.

우리가 '고구려'라고 인식할 때의 이미지는 만주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한반도 북부,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모든 역사적 근거까지 다 옮겨와 한반도만을 경영하려고 하였던 작은 고구려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인 근거는 전혀 없이 수도를 옮겼으니 당연히 시조의 능도 옮겼을 것이라는 설명 하나만을 제기하면서 동명왕릉을 평양에 큼직하게 꾸며놓고 행복에 겨워하면서 우리는 위대한 '고구려의 후예'라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인간들과 무얼 공조하자는 것인가?

고조선 문제건 고구려 문제건 우리의 역사 영역에서 만주에 대한 관심을 덜 갖기 시작하고 그저 평양만 강조한 이들이 누구인데 그들과 무엇에 대해 공조를 하자는 것인가.

어쨌든 우리 민족이니까? 모든 것을 덮어두고 공조하자고?
좋다. 민족이니까 공조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무얼 공조하자는 것이지?
북한에 있는 고구려 문화유적을 보존하는 것을 도와주자고? 그것은 당연히 도와야 한다. 민족의 유산이기 때문에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를 정비하는 것하고 고구려 역사왜곡에 대응하여 공조하는 것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 민족이 힘을 합하여 고구려 문화유적을 보전관리하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조선인들은 역시 단결하여 역사를 지켜내려고 하는구나.'이렇게 생각하면서 고구려사에 대한, 만주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줄이게 될까?
정말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아니면 두가지 다에 해당한다고 본다. 물론 한 가지 더 있기는 하다. 나쁘거나.

정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시정되기를 바라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를 무시하면 안될 정도로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워낙 덩치가 큰 놈이라 힘겨룸은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약점을 찾아서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문적으로 꼼짝 못하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공부를 하게 하고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어떻다고 나와서 떠드는 사람은 많지만 그 인간들 가운데 그동안 꾸준히 연구해온 진짜 전문가들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슈'가 되니까 날뛰는 사람은 많아도 정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다.

결국 정답은 '근본에 충실하자'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또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무어라고 말해도 열심히 공조할 것이고 열심히 자금을 대줄 것이다.

역사전공자로서 한가지 깨달은 진리가 다시 한번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허탈하다.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추세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말해도 결국은 그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야 만다. 진짜 망하기 전에는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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