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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낯? 닦다

而山
2014.04.12 03:52 1,16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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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지난 가을부터 산속에 길을 만들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져 시야가 확보되는 겨울철에 길을 뚫어야 한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마땅한 선을 그으며 나무 곁가지를 자르고

수북한 낙엽을 헤쳐서 땅을 파고 다져 발 디딤을 만든다.



아내는 내가 하는 일마다 마뜩찮아 하는데

길 닦는 일만은 군말 없이 돕는다.

그러나 간혹 이게 무슨 생고생이람? 불평도 한다.

이 무슨 생지랄 이야 하고 짜증내지 않는걸. 고마워하며

아내에게 말한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을 예술이라고 하잖아,

없던 길을 새로 만드는 것도 창작예술이야.

道 닦는다는 것이 길 닦는다는 말이잖아.

지금 우리는 道닦는 중이야

도사 같은 염불 그만하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고 채근한다.



‘그쪽보다 이쪽이 더 환한데 이쪽으로 뚫어’

아니야, 이쪽이야,

내가 물 쪽으로 가깝게 길을 내는 것은 힐링트레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물에 대한 무의식의 기억이 있어,

우리들이 엄마 뱃속에서 10개월간 들은 소리가 물소리야,

그래서 물은 사람들의 심신을 편안하게 이완시켜주는 친숙한 물질이지,

폭포 앞이나, 샤워를 하거나, 비오는 날의 차분하고 센티멘털했던 기억을 떠 올려봐,

더구나 흐르는 물엔 스트레스물질인 코르티솔을 상쇄시켜주는 음이온이 많은,

자연이 주는 축복이야.

세로토닌, 피톤치드, 테르핀, 등등 삼림치유효과를

마구마구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싶지만

강아지 풀 뜯는 소리 말라는 아내의 뜨악한 눈초리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 말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짓은 말아야지.



이제 이 산도 새뜻한 봄차림준비를 하고 있다

봄이 되면 아내와 나의 갑, 을, 서열이 바뀐다.

무상無償의 길 닦는 작업엔 내가 갑이었지만,

나물채취의 생산성산행(?)을 주도할 봄철엔 아내가 갑이 된다.

겨울에 돈 안 생기는 산길 개척에 나를 도운 것도

봄여름 가을에 나를 을로 부려먹기 위한 계산된 자선행사였을 것이다.

그런 줄 알고는 있지만,

매년 환절기에 우울증재발로 고생하던 아내의 호전된 상태가 고마워서 모른척했다.

그래도 나물 삼매경에 빠진 아내를 볼 때마다

산신령의 코털을 잡아 뽑는 듯 한 죄스런 마음으로 불편했지만,

이것이 아내의 유일한 우울증 치료행위이니

산신령에게, 아니 숲속의 명의名醫에게 가호를 구한다.

작금의 핵가족문화에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妻和만사성이다.

댓글목록 1

greentea님의 댓글

greentea 2014.04.12 22:35
누군가의 수고 와 땀이 많은 이들 에게 힐링이되는 장소
" 놀멍 쉬멍 걸으멍 "
제주의 올레길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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