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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마니산 하이캠프-Illimani High camp

이만호
2007.07.27 08:10 2,436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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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은 지구의 일부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사람들에겐 하늘을 향해 솟은 장엄한 고산위용에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감정이지만 그곳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겐 때론 끔찍스럽고 ‘잔인한 경기장’이 된다.
남미 불리비아 안데스의 일리마니산으로 떠나는 우리도 어머니 품속 같은 근교 산에서 자유와 평화 안식 건강 등을 만끽하던 남산골 샌님이 어느날 갑자기 갑옷과 투구로 완전무장 한 서구적 검투사 버전으로 전환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물론 원정등반에 걸맞은 체력단련과 기술연마를 한다. 고산에선 신체적인 조건보다 정신력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몸이 받쳐주어야 강인한 정신력도 발휘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산행이었다.

고산 등반자에게 가장 큰 장애는 고소 증입니다. 5천 미터이상 고산의 산소량은 평지의 절반수준에 불과합니다. 평지에서 하루 산소 흡입량 30%인 150리터 정도가 뇌활동을 위한 필수량이라 합니다. 고산의 희박한 산소량은 뇌활동에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소증세는 두통 식욕부진 구토 판단장애를 일으키며 심하면 폐부종으로 목숨도 잃습니다. 또 기압이 현저히 낮아 비등점이 70도 정도이어서 취사가 어렵고 저기압상태에서의 신체적인 변화가 옵니다. 저기압이면 평지에서도 온 몸이 쑤신다고 하듯이 신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제일 먼저 악화됩니다.
다음 장애는 날씨입니다. 고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합니다. 고산의 악천후엔 인간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이도 고만고만, 고산 등반경력도 고만고만한 우리 세 사람,
5500미터 고도에 설영한 하이캠프에서 날씨가 개선되기를 기다리며 이틀 밤째 텐트 속에서 시체처럼 꼼짝하지않고 누워있다.
여전히 바람은 텐트를 요란스럽게 찌부러뜨리고 세우기를 반복하는 중에 전쟁터 폭음과 같은 천둥소리가 가물거리는 의식을 깨운다.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산악회의 선배인 의사들과 주치의는 나의 고산 등반을 적극 말렸다.
약해진 심장기능과 고혈압, 무릎통증, 특히 심각한 것은 고산에서 안압상승으로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스, 안데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거기에 자신감이 생겨 별다른 조바심 없이 떠난 산행이었다. 이번엔 토악질이 나를 잡았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옆의 대원이 벌떡 일어나 새까만 토사물을 내 침낭에 뿜어댄다. 올해 새해맞이 산행에서 술 취한 친구가 내 침낭에 토한 일을 빗대어 금년은 토사물의 은사가 충만하다며 침낭을 닦아주고 있다. 나는 어제 올라 올 때 이미 토하고 싸서 넘어 올게 하나도 없는데도 모든 음식은 물론 냄새에도 구토 반응을 일으킨다. 이게 바로 환장(換腸)이다. 부족한 산소량과 기압으로 소화활동이 중지되었는지 물만 마셔도 토했다. 바람은 수그러 들 기미가 없다. 가물대는 의식은 누워있는 바위능선이 흔들대는가 하면 때론 유체이탈 같은 가위눌린 꿈에 휘둘리다 깨어 농약 먹은 벌레처럼 비참하게 헐떡이다 다시 땅속으로 침잠 되기를 반복하였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체력이 떨어질 것 같아 가이드를 불러 오늘 정상공격을 하자고 물었다.
잠시 후 돌아 온 가이드는 아래동네와 전화한 시늉을 하며 ‘투 다이 웨더 노굿’ 또는 ‘쓰리 다이, 훠 다이, 웨더 노굿’이라며 손을 아래로 향하며 휘파람을 휙휙 불었다.
나는 그 당시 사람 죽을 정도로 날씨가 나쁜가 오인하였다. 그러나 가이드의 발음이 day를 die로 발음한다는 것을 그 당시 알았다 해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을 거라고 자위한다. 써밋을 말하면 손사래치는것으로 정상은 물 건너갔다는 뜻으로 알아 들었으니까....가이드가 말한 '투 다이 웨더 노굿'은 날씨가 나빠 두 사람이 죽었다가 아니라 Today, weather no good으로 정상공격을 연기하자는 뜻이었고, 쓰리 다이, 훠 다이 웨더 노굿은 3-4일 동안 날씨가 나쁘니 하산하자는 말이었다. 그래도 합의를 본 것은 내일 새벽 1시에 이판사판으로 정상공격을 감행하자는 것이다. 새벽 2시다. 먼저 나와 쟈일을 묶으며 그간 주입되고 격려된 온갖 주문을 외워본다. 기도 같은 간절한 주문과 정상을 향한다는 ‘가슴 뛰는’ 행위도 쇠진한 기력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지는 못했다. 아이젠 발톱을 찍을 때 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30분만에 되돌아 왔다. 나이는 못 속여라는 탄식과 국내산이나 다녀야지의 자조적인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도 비참한 상념에 빠진다.

고산등반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이 등반의 일부분이어야 하지 등반의 전과정이 고통으로 일관될 때는 정신과 육체의 잔인한 싸움이 벌어진다.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킨다는 고상한 표현은 산밑에서의 생각이고 희박한 공기 속에 집중력이 떨어진 의식상태에서 사고능력은 극한을 탈출하려는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매 발자국마다 들숨날숨을 골라 쉬던 오름 짓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백가지 이유를 찾게 된다.
고산등반의 매력중의 하나가 불확실성이다. 불확실한 위험과 난관을 극복하는 모험심이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므로 반감되었고 포터와 가이드의 헌신으로 정보취득과 편의성은 늘었다. 그런 변천에서 알피니즘의 순수성을 고집할 의지도 없고 죽어도 올라가야 겠다는 오기도 없다. 최선을 다하여 올라 갔다 돌아오는 Turning Point가 나의 정상이다. 정상은 등반의 종착점이 아니라 되돌아와야 하는 반환점이다. 그래서 더욱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 고산등반이다. 심판도 관객도 없는 최선의 가치를 본인 스스로 정해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이번 등반에 나의 준비와 정성이 부족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등반기 쓰기를 며칠 미룬 것은 산악인의 정신력은 체력을 압도한다는 신화가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절망과 함께 나의 고산등반도 갈무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자괴지심 때문에 망설여졌다. 신체와 마음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는 즐거움도 행복도 없다는 생각은 하산 때 굴러 넘어진 허리통증이 한동안 나를 괴롭힌 원인도 있다. 지금은 등반욕구가 마그마같이 끓지는 않지만 성욕처럼 시나브로 살아나기는 한다. 이 마조히즘 같은 고산 도착증세는 지나친 술이 몸에 나쁜 줄 알면서도 계속 마셔대는 음주습관같이 못 끊겠다.
등반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삶의 방법이라는 오랫동안의 신념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가 보다.

***등반 사진을 보시려면 왼편메뉴<오르세>단추를 눌러 <원정등반사진>을 클릭하면 됩니다. 한상기 대장의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하여 좋은 사진 많이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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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장효건님의 댓글

장효건 2007.07.29 14:19
아이구 죄송 합니다. 요새 하는일 없이 바빠서....
사진 보기 좋고 수고 하셨읍니다. 앞으로 후배들 이 뒤를 따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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