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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백 때문에 환장할 뻔 했다.

이만호
2006.08.13 03:08 1,273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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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리빙 룸 장식 장 위에 정체 모를 은빛 화장품 백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산에 갔다 오면 내차의 등산 용품들을 정리하여 수납장에 넣고 내 것이 아닌 물건은 따로 장식 장 위에 올려 놓아 아내가 정리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 은빛 화장도구주머니는 주인을 찾지 못하였는지 한동안 그 자리에 그냥 있어 왔다.
.
나는 직업상 출장이 잦은 사람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외도의 기회도 많을 거라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지난 주 수요일에도 타 주 출장으로 외박을 하였고 때 마침 다른 일로 집안에 냉 기류가 흐르며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 때였다

아내가 그 화장 백이 딸내미나 자기 것이 아니라며 내가 잘 알 터이니 임자 찾아 돌려 주라며 변기 타고 앉아 세계 평화를 모색하는 나에게 던 지 듯 주며 나가 버렸다.
나는 그 백을 처음 열어 보았다. 한국제 화장품 회사의 쌤풀과 치약 칫솔과 함께 이빨 표백제도 있었는데 칫솔이 두개였다. 그것도 남녀를 상징하듯 청 홍색이었다. 어럽쇼 이거 내가 덤 테기 쓰게 생겼네.

산이 침묵하므로 산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듯이 아내도 며칠간 말은 안 하지만 그녀가 보낸 메시지는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았다. 침묵의 시위였지만 전세의 기선은 마누라에게 잡힌 듯 했다. 나는 억울하게 뒤집어 쓸 누명을 벗어 낼 결백증명이 요구되었다.

우선 토요일 산행모임에서 화장품 백 사건을 꺼내었다. 수사의 초기단계로 나의 억울함을 호소할 예정이었는데 한 부인이 으악 소리를 내면서 내가 말하기도 전에 백 안의 내용물을 줄줄이 말하였다. 천사의 재림만큼이나 공명 큰 살 떨리는 복음이었다. 자기집에도 그 화장품 백 분실사건으로 가족간의 실랑이가 있었다며 왜 이제 이야기 하냐며 도리어 힐책하였지만 나의 환호는 짐승같은 포효로 산에 메아리 쳤다.

마누라의 얼굴이 떠 올랐다. 그 백에 대한 혐의를 물어 올 때 냅다 되 받아 칠 기세등등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여자분한테 당분간 마누라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유쾌한 반전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극적이고도 통쾌한 반격 시나리오를 구상하여야 한다.

헌데 나의 차에 동승한 여자 분들이 그런 의부 증은 당사자에겐 민감한 사안인 만큼 여자들의 가슴앓이도 몹시 심대하므로 당장 알려주어 안심시키라고 윽박질렀다. 때마침 걸려온 아내의 전화가 있어 곧바로 조건 없이 불어버렸다.

등산기술이 99%의 행운보다 1%의 위기를 위하여 대비하듯이 결혼생활도 99%의 일상보다 1%의 위기관리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이 번엔 아내 것이 아닌 여자 운동화가 내차 트렁크에서 나왔다.
아니 요즘 여자들 왜 이렇게 칠칠 맞지?  자기가 무슨 신델레라 라고...신발 벗어 놓고 가나....

등산수칙에 Pack it in, Pack it out이 있습니다.
무심히 흘린 물건 하나가 남의 집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여 주세요.

댓글목록 1

앤디김님의 댓글

앤디김 2006.08.13 07:05
이젠 쓰레기 수거 그만하세요. ㅎㅎㅎ
다행히도 백주인을 쉽게 찾아서 변기를 타고 평화를 호소하면서
당한 수모를 회복하니 말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아직도 위기관리 못하고 가슴앓이 하다가
주(?)님의 힘을 빌어서 까만속을 알콜로 소독하고 산답니다. ㅎㅎㅎㅎ
(이거 내 얘기 하는것 같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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