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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이란 굴레--

앤디 김
2005.02.04 13:49 2,170 0

본문

제 초딩이 친구가 올린 글인데
너무나 내 마음속, 머리속에 잠겨버린것을 정확히 표현하네요.
오늘도 주(?)님을 모시며 주님의 알콜 힘으로
나의 허영을 께끗이 소독을 해 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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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노래 부를 기회가 있으면 서유석의 "그림자"라는
곡을 부르곤 하는데, 예전 텔레비전이 귀했던 시절 진공관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나왔던 노래이다..
저녁 9시만 되면 우리 식구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는
일찍 자리에 누워 그 드라마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방과후가 되는 족족 동네 만화가게에 죽치고 앉아있는 큰놈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다리가 네 개 달린 텔레비전을 사 가지고 오셨는데,
그 일은 잠잠하던 내 허영심의 불을 지른 단초가 되고 말았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
내 눈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빵집이나 찻집에서 오렌지 쥬스나
빵을 시켜놓고 거의 안 먹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없어서 못 먹는 빵이나 쥬스를 어떻게 남기고 이야기만 하다
나가는 것일까??
그 순간 나는 엄연히 존재하는 나의 한계(먹는 것에 생사를 거는..)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다음날 아침..
난 홀연히 일어나 아버지가 세수하러 가신 틈을 타
주머니에서 거금 오백원을 훔쳤다..
그리고 방과 후 빵집에 들어갔다..
"아줌마!! 여기 콜라 한 병과 카스텔라좀 주세요.."
난 콜라를 잔에 따르고 나서 카스텔라를 노려보았다..
먹고 싶어 환장하는 마음에 즉시 포크에 손이 갔지만,
난 나 자신을 스스로 타일렀다..
"이걸 먹으면 넌 보잘것 없는 놈이야.."
결국 콜라만 드라마 주인공처럼 2센티 정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정도는 드라마 주인공도 마셨으니까..)
"야!! 너 빵 안 먹고 가??"
"생각 없어요.."
"그럼 싸가지고 가든지.."
"자꾸 말시키지 마세요.. 전 원래 이래요.."


그러나 사실 허영심은 그때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보다 훨씬 이전인 3학년 때,
난 외삼촌이 집에 들고 왔던 조니워커병에다 보리차를 따라서
양주처럼 위장한 체 들고 다니며 병나발을 불었다..
그리고 복장은 반드시 조끼차림으로..
서부극의 총잡이들이 조끼를 입고 양주병을 들고 다니며
병나발을 부는 것을 눈여겨본 탓이었다..
또한 담배도 직접 사서 조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피웠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무는 그 멋이란
크린트이스트우드가 부럽지 않을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다..
국민학교 졸업 무렵 증조할머니 장례식 전날 밤,
지하창고에 숨어 담배를 피우다 불을 질러 수많은 문상객들 앞에서
개 맞듯 맞은 기억이 있고,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사람들이
쑤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허영심은 좀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예전에 "내일 잊으리"라는 드라마에서 임채무가 여자문제도
꼬이고 사업도 꼬였을 때,
수염을 기른 초췌한 얼굴로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깡소주를
마시는 것을 보고 난 즉시 슈퍼에서 소주를 두병 사서는
텅빈방에 앉아 깡소주를 마셔댔다..
허영은 나로 하여금 아무도 없는 텅빈방에 앉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게 했고,
"넌 지금도 내가 안으면 안길 여자야!!"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읊조리게 했다..


96년도 전직의 갈림길에서 모든 걸 뒤로하고 홀로 떠난 여행길이,
여행자가 자기 입으로 말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작 등에 매고 나간 "이스트 팩" 쌕을 매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란 걸 주변인들이 어찌 알겠는가??
2박3일로 떠난 그 여행의 첫날밤에 벌써 "이스트 팩"에 싫증을
느낀 여행자가 집에 돌아가고 싶은 유혹과 모진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주변인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리하여 여행자가 여행길에서 얻고 돌아온 것이
"이스트 팩의 퇴출" 결심이었다는 것을 또 누가 알까??


난 수 년 전부터 겨울을 춥게 지낸다..
변변한 겨울 파카나 코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날 동정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그 비극은 "전 미국이 열광한  가죽잠바" 의 광고문이
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고,
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금을 송금했다..
배달된 가죽잠바(주변사람들은 자꾸 비닐잠바라고 한다..)를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배꼽 위에서 멈춘 길이와 터미네이터가 입어도 남을만한
광활한 어깨넓이,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간 뽕..
그러나 전 미국을 열광시킨 그 가죽잠바가 옷장 깊숙이 처박힌 체
빛이 없어도 광을 내는 뺀질뺀질함으로
어두운 옷장 속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과연 미국인들은 알까??
얇은 옷을 입고 벌벌벌 떨면서 혹한기를 두서너 해 더 보낸다면,
그때 가서야 나의 오랜 허영심은 사라질 것인가??


 




오창선: 무릇 인간이란 저렇듯 빈곳이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나지. 뭐가 어때 괜찮구먼.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 같이 주 찬양 한번 하면 쓰것다. -[02/04-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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