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활동

2월 답사 산행기

이만호
2004.02.12 22:24 1,5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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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맨살 짐승으로 살고 싶었다.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매달 두 번째 주 일요일 8시에 모여 산행하는 무리들이 있다. 산악회 정기월례산행을 위한 사전답사 팀이다. 그들은 날씨나 계절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모인다. 신경 쓴다고 구름이 걷히거나 비가 멈추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경에 순응하는 채비와 마음가짐으로 나온다. 오히려 날씨가 악천후일수록 도전욕구가 상승되는 군번들이다.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새로 산 모자나 등산화들을 자랑하며 일상에서 꺼 놓았던 채널의 주파수를 맞추어 마음의 파장과 진동을 나눈다. 합승하여 비좁아진 차 안에서 어제 밤 숙취로 술 냄새 악취를 풍기는 친구가 있어도 불평하지 않는다. 산에 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마음이 너그러워 진다. 낯 설고 말 설은 미국 땅에서 희희덕거리며 산에 같이 갈 수 있는 산 벗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다. 보태어 한민족 특질인 고운 놈 미운데 없고 미운 놈 고운데 없다는 한패의식이 소속감으로 결속된다. 서로 동질의식을 확인하고 키우는 대화들로 차 속은 왁자지껄하다. 실망스러운 본국의 정치판 이야기부터 주변의 잡다한 이야기들까지 끝이 없다. 누구는 암으로 죽었고 누구 누구는 성인병으로 고통스레 살며 누구는 이혼했고 누구는 성기확대수술을 받았다는 등 대화들이 팝콘 튀듯이 쏟아진다. 그러면서도 뭔가 구체적으로 떠 올릴 수 없지만, 산에 가면 일상에 치여 있던 어떤 느낌들이 되 살아날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오늘은 기존의 등산로를 무시한 직 등반(Direct Climbing)이다. 지도에 정상까지 직선을 긋고 얼음이나 암벽따위의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일직선상으로 오른다. 일반인은 길이 있는 곳까지만 오르지만 산쟁이들은 길이 끝난 곳부터 등반의 시작이라며 신바람을 낸다. 직 등반은 지도상에 자기위치를 정확히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기의 현 위치를 알아야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위치에서 정상까지 방위각이 정해지면 나침반을 이용하여 목측 할 수 있는 거리의 목표물까지 간다. 거기서 다시 진행방향을 확인하고 재설정하는 독도법 등산 방식이라 수시로 가는 길을 점검하여야 한다. 산아래 세상살이도 그렇듯이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길도 확실하여진다.
갈 길이 험하다. 직선이니까 기울기 경사가 심하다. 가시덤불, 바위, 눈 비탈, 얼음사면을 헤치며 오르니 숨이 가쁘다.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듣기 좋다. 열심히 사는 것같이 열심히 오른다. 온통 땀 범벅이라 조그만 새의 날갯짓 바람도 느낄 것 같다. 하늘은 큰 소리만 쳐도 깨질 것같이 청정하다. 낙엽위로 산짐승처럼 몸을 던져 누우니 하늘이 열렸다. 하늘을 가렸던 풍성한 잎들을 모두 떨구어 낸 나무들의 절제된 아름다운 선이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 서있다. 여백 많은 수묵화다. 텅 빈듯한 여백의 미는 아름다움을 넘어 위대하다. 그래서 겨울 산의 적요寂寥함은 적정寂靜의 경지 같은 깊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한다. 때론 아스라이 퍼져나간 산 능선 파도가 까닭 모를 슬픈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온통 흑백 밑그림 같은 수묵화 색조, 그래서 녹색의 갈증을 느낄 때 생경한 푸른색이 들어 온다. 겨울이어서 더욱 푸른 소나무다. 여기도 소나무가 참나무에게 밀린다. 3년 전 산불이 나며 거목들이 불타서 하늘이 열리자 번식력 좋은 새끼 참나무류들이 고만고만하게 키재기를 하고 있다. 이들이 크면 무성한 잎으로 하늘을 차지하며 소나무를 바위벼랑으로 내몰아 낼 것이다. 사람들은 솔잎이 건강에 이롭고 사철 푸른 지조와 절개의 상징성을 좋아하지만 생태계에선 소나무가 욕심꾸러기 건달로 취급 받는다. 소나무뿌리는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독 물질을 분비하여 소나무 밑에는 풀조차 살지 못하는 삭막한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만 살겠다고 주위에 베풀지 않는 자의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말로는 쇠락이다. 그러나 사람은 곰팡이의 독 물질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을 유용하게 이용하였듯이 솔잎의 피톤치드 성분을 음식의 방부제나 잡초를 억제하는 제초제같이 쓴다. 나아가 초목식물들이 살기 위하여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광합성하며 생성된 배설물인 산소(식물의 똥이다)가 인간에겐 절대 필요하듯이 생태계에선 선악의 구별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약초와 잡초의 구별도 없다. 금 은 동 우열같이 그것은 사람들 기준으로 매긴 가치이다. 금은동 우열적 가치가 아니라 조화가 존중되는 곳이 숲속이다.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에서도 살아 남는 종은 독기어린 강한 종이 아니라 적응력이 높은 종이다. 어울려 상생하여야 망하지 않는다. 조화를 이루되 동일화 되지 않는다는 논어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복합문화속의 이민자인 우리만이 아니라 숲속에도 적용된다. 겨울에도 욕심스레 잎을 달고 있는 소나무와 달리 참나무는 여름내 키운 소중한 잎을 미련 없이 땅으로 보내 미생물을 키우고 썩게 하여 땅을 기름지게 한다. 다른 식물까지 배려한 나눔은 봄에 새 생명으로 보상된다. 버리지 않고 얻는 것은 없다. 움켜쥔 손으론 남과 악수조차 못한다. 홈 디포사의 창업자 케네스 랑곤은 전 재산을 내놓으면서 부富는 거름과 같아서 쌓아 두면 썩는 냄새를 풍기지만 뿌려주면 많은 것을 자라게 한다고 말했다.

3개팀으로 나눠 각각 다른 지역에서 출발하여 정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꼴찌팀이 내려가 하산주를 사기로 한 것이 잘못이었다. 팀간 경쟁의식은 정확도보다 속도를 우선하여 돌격 앞으로 하였다. 그 결과 서로가 궤도에서 한참 벗어 난 지역에서 만났다. 실패다. 우리는 이러하였는데 너희는 어쨌다며 나에게 판정을 물었다. 비록 재미 삼아 웃으며 옥신각신하는 다툼이었지만 산아래서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던 승부근성이 산 위서 재현되는 것이 마뜩찮았다. 본질이 왜곡된 시합은 원천 무효로 선언하였다. 산에서 경쟁은 없다. 등산은 입이 아니라 발로, 두뇌가 아니라 가슴으로 올라야 한다.

산 꼭대기는 눈꽃 천국이었다. 소나무에 눈이 넘쳐 가지가 부러질 듯 고통스러웠겠지만 우리 눈엔 환상적이었다. 이곳에선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장면이었다. 과연 높이 올라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의미 있다고 수긍하며 양지바른 곳에 점심자리를 폈다. 버너 피워 고기가 구워지고 찌게가 끓으면 하나님도 말릴 수 없는 시간이 된다. 그날 따라 연세 지긋한 분이 좌중을 둘러보는 시선과 미소가, 발렌타인 때 연인의 선물을 숨겨 온 남자같은 몸짓으로 배낭에서 양주 한 병을 짜자잔, 꺼냈다. 아니 산에 술을 가져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한 병 뿐입니까? 모자라잖아요… 두어 순배 돌아가니 비아그라 먹어야 합방된다 던 친구도 뱀장어 같은 강장식품앞에서 조차 자기는 매력과 정력을 죽여야 한다며 형님이나 드세요, 허풍친다. 술 깨서 내려가자고 고래 고래 노래까지 불렀다. 인자요산이 아니라 광인狂人요산이다. 환갑지난 분이 개다리춤까지 곁들이며 추임새를 올린다. 갈수록 점입가경이라더니 웬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영자의 입술 등 수십년동안 괄호속 기억에 묶여있던 노래들이 터졌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저속한 노래지만 흉하지 않았다. 역설스럽게도 상승에 버금가는 무너져 내리는 전락의 기쁨도 있었다. 그곳에서 윤리와 도덕은 한낱 지나가는 유행이고 바람이었다. 똥구멍을 항문이라고 해야 할 위선도 없었다. 그냥 숲에서 맨살로 사는 짐승이고 싶었다. 가슴 따뜻한 짐승으로 남고 싶었다. 산은 짐승 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기른다.<코아라이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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