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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산과 알피니즘 - 1.4 알피니즘 II - 등산은 어디까지 왔나?

산악회
2004.04.13 23:21 3,28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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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산과 알피니즘


1.4 알피니즘 II - 등산은 어디까지 왔나?


오를 곳이 없다

21세기를 맞이한 세계는 지적, 공간적으로 좁아졌다. 지구의 공백이 사라진 지 오래며 인간들의 이동이 심해지면서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을 보기 드물게 됐다. 초등하기까지 32년이 걸렸던 에베레스트를 예로 든다. 1993년으로 초등 40주년을 맞는 그 정상에는 하루 35명이 오르고, 표고 5,400미터인 베이스캠프에는 300개의 천막이 줄을 이어 때아닌 촌락을 이루고 500명이 득실댔다. 만고의 고요에 잠겼던 지구의 벽지 에베레스트 산록의 쿰부 빙하가 장터로 돌변하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네팔 현지 보고)
이 40년 사이에 최고봉에 오른 자는 386명이고 100명이 죽었다. 한편 북미 대륙의 최고봉인 매킨리(6,194m)는 같은 해 초등 80주년을 맞으며 5월 하순 한 주간에 500명이 도전하고 15명이 죽었다. 1993년까지 매킨리 등정자는 7,172명이고 사망자는 71명이었다. 등산의 메카 알프스는 어떤가? 고도는 낮은 편이나 여름 한철 티롤 지방에서 113명, 스위스 알프스에서 149명 그리고 노말 루트로 관광객도 오른다는 몽블랑에서 여름 한철 10명의 희생자가 났다. 등산기술은 발달하고 장비도 놀랍게 개량되었으나 산사고는 날로 늘고 있다. 문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등산세계에도 그대로 일고 있는 셈이다. 대중 소비와 매스레져시대의 취약성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침해하고 이것이 산사고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명과 자연

인류의 발달은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현대문명이다. 그런데 밝은 미래를 약속했던 문명사회에 어느새 어둡고 무서운 그림자가 가리기 시작했다.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개발(Graben)이 무덤(Grab)을 뜻한다고 했는데, 위대한 시인은 18세기에 벌써 문명의 병폐를 예언했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힐라리(E. Hillary)는 네팔 정부에게 에베레스트를 5년간 입산 금지 조치를 내리라고 제언했다. 오늘날 지구의 끝 에베레스트가 지상 최고의 쓰레기터로 둔갑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힐라리는 대자연의 보호를 역설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문명을 추구할 것이냐”,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냐”의 기로에 섰다.

등산가의 조건

등산가는 단순한 등산 애호가가 아니다. 몸이 튼튼하고 산이 좋아서 산에 오른다고 모두 등산가라고 할 수는 없다. 등산가는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근원적인 물음을 언제나 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등산의 역사를 공부하며 뚜렷한 등산관을 지니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산에 가는 사람은 많다. 그들 가운데 알피니스트로서의 정신과 몸가짐을 가지고 산에 가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미답봉이 없어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에 오르는 과정이며 정신이다. 이것을 고도(Altitude)보다 태도(Attitude)라고 말한다. 등산계에 미답봉이 없다는 것은 모험과 공포의 대상이 없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문명의 난숙은 생활의 편의를 가져왔고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프랭크 스마이드가 편의성(Expediency)을, 이반 슈나드가 불확실성(Uncertainty)을 논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이러한 편의성과 불확실성의 문제는 조금도 새로운 논리가 아니다.
등산계를 개척해 나간 지난날의 선구자들은 언제나 어려운 조건하에 무서운 등반을 했다. 그들의 알피니즘은 편의성과 거리가 멀었고 언제나 불확실성이 따랐다. 몽블랑의 등반이 쉽다고 하기 전에, 마터혼의 훼른리 산릉이 별것 아니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초등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 생각해 볼 일이다.

등산과 인생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죠지 휜치(George Finch)가 말했다. “산의 정복은 인간의 자기정복의 일부”라는 아놀드 런(Arnold Runn)의 말도 있다. 등산에 관한 금언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모두 위대한 등산가들이 산과 만나면서 얻은 등산관이요 인생관이다. 그런데 산과 인간의 관계는 옛날과 크게 달라졌다. 지난날 등산은 인간의 탐구욕과 지식욕과 정복욕에서 시작했다지만 지금은 인간의 생존 조건으로 됐다. 문명이 인간을 파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잃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보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활력의 재충전이다.
현대인은 많은 자격증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윌더니스 씨티즌쉽(Wilderness Citizenship)이다. 등산관을 바탕으로 한 인생에 주어지는 대자연 시민증이다. 여기 그러한 자격과 권리를 취득한 사람이 있다. 1950년 인간으로서 처음 고도 8,000미터 안나푸르나에 오른 프랑스 원정대장 모리스 에르조그는 그의 원정기를 아래와 같이 맺었다.

“안나푸르나는 우리가 빈 손으로 갔지만 앞날을 살아가는데 필
요한 다시없는 보물이다.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우리 인생의 새
장이 열렸다.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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