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활동

위트니산 등반기

관리자
2004.01.16 08:24 3,27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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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산 등반기

3월 1일
비행스케줄, 자동차렌트, 현지구입 식량과 장비등 매사가 마누라 뺨 때린 날 장모 오는 상황같이 환장하게 꼬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 론파인이라는 산간벽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은 때가 현지시간으로 새벽 1시였다(아틀란타시간 새벽 4시).

3월 2일
화창한 날씨에 기온도 온화했다. 하늘을 찌르는 창대 같은 모양의 휘트니 정상이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신 자태로 멀리 솟아있는 것을 보고, 아무나 범접하기 어려울 듯한 신령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나를 충동질하는 무슨 장력이 작용하는지 가슴이 뛰었다.
옆의 친구는 날카로운 예각(銳角)으로 윤곽선을 그리며 공중에 떠있는듯한 모습이 마법의 성채 같다고 말했다. 이 친구 어렸을 때 만화책 많이 봤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벌써부터 마술에 홀린 듯 넋을 잃고 쳐다본다. 그래 마왕 만나러 성채로 가자.
레인저 사무실에 입산신고를 하러 갔더니 윈터스톰으로 길이 막히고 기상상태가 좋지않다고 염려하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할 군번인가, 곤란이 많을수록 신바람 나는 이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서부영화 로케이션장으로 많이 이용되었다는 사막지대를 지나 낙석이 심한 길에서는 낙심도 하였지만 눈이 푹푹 빠지는 높이로 올라서자 임자 만난 기분이다. 허지만 짊어진 배낭의 하중 때문에 모두가 우거지상이다. 겨울 새벽시장의 달구지 끄는 황소들 콧김 마냥 씩씩대며 오른다. 짐 진자들아 좀 쉬어 가자 라는 말이 복음인 것을 실감한단다. 불과 몇시간내에 열대에서 한대로 변한 주위경관에 간간이 누구 입에선가 “지기미 ㅅ팔 드럽게 아름답네”라는 감탄詩語(?)에 더 걸쭉한 시어로 화답하는 끼들을 보이며 키득거렸다. 욕도“먹는 것”이라는 음식과에 속하는지 힘든 상황일수록 찐한 욕으로 기운을 돋구곤 하였다.
오후 5시 30분 9300피트 지점에 캠프지를 정하고 북어국을 끓였다.

3월3일
어제와는 달리 산 높이를 더할수록 산 기울기가 심해진다. 양옆으론 병풍바위가 힘찬 하늘 금을 그으며 정상 쪽으로 뻗어 있다. 한국산은 깊이가 있는데 반해 이 산은 높이만 있다. 해서 한국 산이 살 가운 싯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면 이곳은 강파른 기상만이 나를 압도한다. 가파르게 높은데다 불끈거리는 힘까지 지녔다.
바위얼굴도 한국산은 부처 같은데 이곳의 바위는 십자군병의 얼굴같이 험상궂다.
11시경 위험한 지그재그가 끝나는 10,160지점에서 휴식과 비데오촬영을한 후 한여름엔 늪지대였을 성싶은 설원을 지나 12시 30분 아웃포스트캠프장에 도착하여 1시간 가량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다. 고도에 따른 기압관계로 취사시간이 엄청 더디다.
눈에 덮인 미러호수를 오른쪽에 내려다보며 지겨운 지그재그를 올라 팀버라인(수림한계선)을 벗어났을 땐 운행정지 예정시간인 4시가 넘어서다. 예정지역보다 800피트 아래인 11,200피트 편편한 바위 위에 텐트를 쳤다. 친게 아니라 돌로 눌러 놨다.
간헐적으로 불던 바람이 해가 지면서 광풍으로 변해 밤새도록 텐트를 할퀴었다. 두명의 대원이 고소증세로 고통스럽게 끙끙거리고, 깃빨처럼 펄럭이는 텐트를 들었다 놨다하는 바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3월4일
고소증세가 심한 대원을 제외한 4명의 대원이 정상공략에 나섰다. 정상은 오른쪽의 피너클(정상부근의위성봉)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바위로 이루어진 같은 골(骨)산이라도 한국의 산은 아기자기한 만물상을 이루는데 이 산은 지진으로 쓰러진 빌딩 위에 솟아오른 첨탑 생김의 집합체 같은 강한 인상이다. 무질서하게 쓰러진 바위 탑에서도 우렁찬 위용을 느끼는 것은 거대함에 대한 외경 심이리라.
10시30분 모레인(퇴석지대)아래 위치한 11,780피트의 연못을 지나 트레일캠프지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이었다. 비상식으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여기서부터는 절벽에 가까운 가팔진 경사를 97번의 스위치백을 이용하여 올라야한다. 왼쪽의 디스커버리봉에서 뮤어봉을 거처 휘트니 정상까지 로켓모양의 암봉들이 우리 틈입자들을 정지시키는 듯한 손바닥 형상으로 솟아 있다.
1시 30분쯤 올라야할 마루금 긋기가 가능한12,380피트 고지에서 두 대원을 정상공격조로 선발하고 짐 책크를 하였는데 둘 이어야 할 비박색(튜브모양의 1인용텐트)이 하나밖에 없었다. 출발 때부터 정상등정에 대한 야심찬 속내를 보이던 대원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으로 핏대를 세웠다. 이제까지의 그의 욕은 싱거운 음식에 치는 소금 같은 맛깔이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 짜게 치는 것 같았다. 고소에서는 조그만 일에도 예민해진다.
겨우겨우 분을 삭여 올려 보낸 정상공격팀이 중간에서 되돌아 내려온 시간이 3시였다. 기존 루트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 통과할 수 가 없었단다.
너무 늦은 시각이긴 하지만 겁에 질려있는 젊은 대원을 지명하여 나와 함께 재차 시도하기로 하고 나머지 대원은 제 2캠프로 하산시켰다. 정상까지 4.7마일, 근교산행 같으면 왕복 5시간이면 족할 거리지만 지금은 100피트 고도 높이는데 1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고소에서 밤새울 일이 걱정이다.
불가에서는 소신공양을 수행의 극치라 한다는데 오늘밤에 있을 냉동공양도 그 반열에 들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안락함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고 이익이 있어야 사람들은 행동한다는데 이게 무슨 지랄인가? 움직인 만큼 나아가고 힘쓴 만큼 높일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하려고? 풀리지 않는 법어 같은 화두다.
오름 경사가 심해 코가 닿을 듯 하다. 문라이트등반을 생각도 하였지만 야간운행의 위험성이 염려되어 포기하고,7시30분 13,250피트 지점에서 한사람씩 누울 수 있는 비박(비상노숙)지를 찾았기에 아래쪽에 젊은 대원을 누이고 알미늄코팅비닐로 둘둘 말아서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로 눌렀다. “형 오늘밤 나 동태되는거 아닌가요?” 코와 입술은 헐고 얼굴색은 푸르딩딩한게 벌써 반송장인데 눈망울만은 생기 있는 사슴 눈같이 예쁘다. 얼려 죽인 명태가 동태지만 잘 얼리면 황태도 된다. 내일 아침 황태로 거듭나라.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종종걸음 치며 우리를 이상한 듯 쳐다봤다.
쌩떽쥐뻬리는 사막의 별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였지만 고산의 별을 못 봐서 그랬을 거다. 영롱하게 빛나는 그 큰 별들이 팔을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막대로 휘저으면 아니 건드리지 않아도 폭포같이 쏟아질 것 같은 보석천정아래서 추위에 떨며 이를 악물고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극한체험에 대한 생체실험인가?.

3월5일
우리가 웅크리고 밤새운 곳은 아직도 희끄무레한 여명인데 앞산의 꼭지점은 일출햇살로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훈훈한 듯 하였지만 마음과 달리 몸과 손은 추위에 심하게 떨려 사탕하나 입속으로 집어넣는 것도 과녁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 얼은 몸의 관절을 이리저리 책크해 가며 얼음과 눈으로 혼합된 긴 사면을 횡단한다. 내가 나아가며 만드는 발판에서 부서져 나가는 얼음조각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굴러 내려간다. 저것이 내 뭉뚱이라면....뒤따르던 친구가 무서워 못 오겠단다. 욕을 바가지로 했더니 쭈빗거리며 발을 뗀다. 10시 30분에 13,780피트의 트레일 크래스트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하여 서쪽으로 넘어갔다. 이곳부터 정상까지 2마일은 등고차는 심하진 않지만 태평양쪽에서 부는 바람과 그 강풍이 몰아 쌓아 논 눈 때문에 전진에 애로가 많았다. 날씨환경도 동쪽과 판이하게 달랐고 깍아지른듯한 벼랑끝머리를 장시간 횡단하는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멀리 눈 높이 하늘이 캄캄하게 변하는 기상악화 조짐이 마음을 조급하게 하였지만 몸은 물 속을 걷는 양 진도가 없다. 캠프와의 통신도 두절되었다.
정상등정에 대한 욕심과 “만약의 사태”라는 불안스런 갈등이 부러진 손가락의 통증과 함께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나를 괴롭혔다. 흡사 신경회로가 오르는 동작 하나밖에 없는 단세포동물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킬러니들봉을 지날 때 헬리콥터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우리 둘의 머리 위를 계속 선회하였다. 처음엔 손을 흔들기도 하였으나 그것도 귀찮고 힘들어하며 태엽 풀려 가는 인형처럼 걷고 있을 때 정상부근 설원에서 빨간 신호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 조난 신호탄이잖아, 그럼 우리말고도 이 산에 선등자가 있단 말인가, 그는 지금 구조요청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조난상태는 어떨까?, 골절 혹은 하이포써미아(저체온증)? 조난자가 여자일 때는?(잠시 야리꾸리한생각에 히히히),그런데 헬리콥터는 왜 구조하지 않고 돌아갈까? 별의별 상념으로 신호탄지점에 가까스로 도착해 보니 신호탄은 지상에서 쏜 것이 아니라 헬리콥터에서 우리의 운행정지(기상악화)목적으로 투하한 것 이었다. 운동장만큼의 눈밭이 핏빛으로 붉게 변해 있었다.
눈보라 사이로 잠깐 바라보이는 정상까지는 200피트 남짓, 하지만 왕복 두어 시간은 소요될 것 같았다.
1시40분, 전진이냐 하산이냐 망설이고 있을 때 ,바람피해 웅크리고 있던 친구가 회기를 꺼냈다. 사진 찍고 빨리 내려가자는 채근 질이었다. 아랫동네 내려가서 회한스럽겠지만 그 시점에선 하산만이 최선의 안전 책이었다. 하산도 쉽지는 않았다. 4시 30분 비박장소 도착하여 짐을 다시 꾸리고, 거의 구르다 싶이 5시45분 트레일 캠프지를 거쳐 어두워진 7시, 제2캠프지 도착하니 본대가 철수하면서 지어 논 모래 섞인 밥이 텐트 속에 있었지만 코코아 한잔만 마시고 죽음 같은 잠을 잤다. 좋은 침대만이 단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한 밤이었다.

3월6일
캠프 철수하여 9시 하산시작, 밤새 론파인 마을에서 우리들 걱정에 잠을 설치고 새벽에 출발하여 캠프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시는 회장님과 만나 그간의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하였다. 2시 20분 포탈서비스 주차장에 도착하니 모두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마주 보기가 민망했다. 메말라 가는 가슴에 이런 울컥한 감동 때문에 어울려 산에 오는가 보다.

최후의 심판장같은 눈 사면으로 나뒹굴어질 때마다 다시는 산에 안 올거라는 맹세를 이빨갈며 하던 친구가 시원한 맥주 까며 달리던 라스베가스 길의 차안에서 겸연쩍게 묻는다.“다음 원정등반은 언제 갈꺼유?” 산 위의 눈보라 광풍도 산 아래서는 하늘이 내린 축포같은 은총으로 되새김질되니 또 가야 되겠지.....

*휘트니산은 미 본토에선 최고 높은곳(14,494피트)으로 캘리포니아주의 론파인에 위치한다, 조지아한인산악회는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50개주 최고봉 등반계획의 일환으로 오는 5월 2일-6일 원정등반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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