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활동

애팔라치아 조지아구간 종주기

오창선
2004.03.21 22:20 2,53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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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트란타로 와서 보따리를 풀고 장사랍시고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 보니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 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1년 가까이 x오줌 못 가리고 지내다보니 서울에서 꽤 부지런히 다니던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다. 산에 갈 방법을 찾다보니 조지아 산악회의 류신웅 이사장님(전임 회장)의 연락처를 알게되어 전화 드렸더니 친절히 안내해 주셔서 당장 그 다음주 부터 배낭을 꾸려 따라 나섰다.

산에 다니기 시작 하면서 마음도 한결 편안해 지고 설령 지금 보다 상황이 더 나빠 진다고 한들 대수냐 하는
배짱도 생겼다. 그렇게 정기산행, 답사산행을 여러 회원들과 같이 다니면서 언제 부턴가 아파라치안 트레일을
조지아 구간 만 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 정보 부족에 성의까지 모자라니 마음만 있을뿐, 실제로 나서진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 추수감사절 연휴에 유성두 총무 일행이 A.T.를 다녀온 후로 이젠 정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올 봄쯤 으로 예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83 마일(약 133 km)을 계속해서 걷기 위해 평소 하던 헬스크럽 에서의 운동량을 주 4-5회로 늘리고, 강도도 좀더 높였다. 그러면서 같이 갈 사람을 찾아보니 김홍명씨가 같이 가잔다. 출발 예정일을 3월 둘째주로 잡고 내가 없는 동안 가게일을 도와줄 파트타임 직원을 구해놓고 REI 를 들락거리면서 필요한 물건, 부피가 작은 슬리핑백 등을 장만했다. 산악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A.T. 간다고 글을 올렸더니 앤디김이 Trail head 까지
태워 주겠단다. 이젠 모든 준비는 되었다. 돌발사태만 생기지 않으면 기어서라도 끝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출발날짜를 기다렸다.

첫날 (3/10): 새벽 4:30 시간에 맞춰 김홍명씨 가게 주차장 으로 나가니 벌써 홍명씨, 앤디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배낭을 싣고 바로 조지아 400번을 타고 북상한다. 53번을 만나 오른쪽에 있는 와플하우스 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들어 갔더니 앤디가 밥을 사준다. 엊저녁에는 이만호 회장님이 중간에 내려오지 말라고 저녁을 사 주셨는데 이젠 얻어 먹은 밥 때문에도 걸어야 한다. 조금더 들어가니 비포장 도로다. 한참을 더 들어가니 A.T.로 접근 할수 있는 approach trail 이 나온다. Nimblewill gap 이다. 차에서 내려 앤디의 전송을 받으며 출발 한다. 07:40 분, 여기서 2.5 마일을 올라가면 Appalachian trail 이다. 이젠 묵묵히 걷는 일만 남았다. 꽤 쌀쌀 하다. 1 시간여 올라 가니 Springer Mt. 이 나온다. 밤새 뿌린듯한 눈이 조금 덮여 있어 산에 온 실감이 나게 해준다.

김홍명 씨와 사진을 한장 찍고 본격 적인 A.T. 산행을 시작 했다. 날씨가 좋고, 산내음을 맡으니 기분이 말할수 없이 상쾌 하다. 걸어야 할 거리가 18.5 마일 이라 5일 중 가장 길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크게 힘들진 않다.
다만 오랜만에 큰 배낭을 매었더니 어깨가 아프다. 점심을 미싯가루와 trail mix, power bar 등으로 떼운다.
홍명씨 잠시 쉬지도 않고 출발 하잔다. 오케이, 가자구.

첫날밤을 묵을 Gooch gap shelter 에 도착하니 16:50 이다. 생각 보단 쉽게 걸었다. 속도도 이만 하면 괜찮다. 도착하니 먼저 온 5명이 벌써 저녁 준비들을 하고 있다. 우리도 햇반과 육계장으로 저녁을 준비 하면서 보니
이층으로 된 12-14 명이 누우면 꽉 찰것 같은 자그마한 통나무 오두막집 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에서 보던
대피소 보단 훨씬 작고 한쪽벽은 아예 없어 실내라고 보긴 어렵다. 3면 벽에 지붕이 길게 내려와 있는 눈, 비는 피할수 있는 개방형에 그야말로 대피소다. 저녁을 먹고나니 다들 잠잘 준비를 하는데 누구도 세수 같은건 아예 생각도 않는다. 우리도 19:30 쯤 잠자리에 든다.
낯선 산중의 잠자리라 피곤한 몸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좁은 슬리핑 백 안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옆에서 곤히 자는 김홍명씨가 부럽다. 저건 복이다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둘쨋날 : 아침에 눈을 떠 슬리핑 백 밖으로 얼굴을 내미니 코 끝이 쨍하니 춥다. 어제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던
덩치 큰 친구는 벌써 떠나고 없다. 간단히 끓는 물 부어 먹는 봉지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린다.
07:40 분 Neels gap(16 miles) 으로 걷기 시작한다. 여전히 날씨는 쾌청하다. 점심을 먹으려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어제밤 같이 잤던 젊은 친구가 지나가다 옆에 앉는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니 서슴없이
Maine 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 아니, 이런 대가를 몰라 봤다니. 호기심에 이것 저것 물어보니 사전 준비
를 철저히 한것 같다. 인터넷 사이트(www.ray-way.com / www.appalachiantrail.org.) 서핑과 관련
서적을 거의 매일 하루 2-3 시간씩 읽으며 1년간 준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배낭을 매어보라고 주는
데 작고 가볍다(실은, 그래서 1-2일 걷는 Hiker 인줄 알았다). 21 파운드 란다. 이 배낭으로 그 머나먼길
2170 마일을 ? 놀랍다. 우리 배낭이 4박5일에 30 파운드(약 15 kgs) 인데 - 그것도 중간보급을 받기로 하고 -
그러니 어디에서 물을 얻고, 식량을 보충하고, 옷과 신발을 교체하고 등 말하자면 준비된 사나이다. 원거리
산행은 결국 무게와의 전쟁이란걸 철저히 알고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약 5 - 5.5 개월 예정 하고 간단다.

오후 들어 홍명씨가 발가락 통증이 심하다고 타이레놀을 먹는다. 발끝이 등산화 안쪽에 닿아 downhill 을
내려갈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 나도 어제보다는 약간 더 힘이드는 것 같지만 별 무리는 없다. Neels gap
에서 유 총무와 이상철씨를 만나기로 되어 있어 조금 서둘러 걷는다. 16:45 Neels gap 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여기 shelter 는 유료다. 16불을 내면 매트리스 깔린 작은 싱글 침대와 더운물 샤워
도 가능 하다. 간이 매점도 있어 식량과 간단한 등산장구도 구입 할수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것 같다.
유총무와 이상철씨가 저녁식사와 12 팩 캔맥주를 사갖고 먼길을 달려왔다. 고마운 사람들.
응원팀이 사온 맥주를 보더니 옆에 있던 젊은미국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아니 이 친구들 자기네 줄지
안줄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좋아 하다니. 밝고 건강한 모습들이다. 모두 나누어 한캔씩 마신다. 너무 좋아
한다. 어제 Gooch gap 에서 잘때 늦게 와서 새벽 같이 떠났던 덩치큰 친구가 주한미군으로 의정부에서
1년간 근무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나서 유총무가 싸온 김치찌개를 먹어 보겠냐고 하니 젓가락을
들고 덤비는데 엄청나게 먹는다. 일부러 남겨둔 내일 아침밥 까지 김하고 깨끗이 비워 버린다.

A.T. 전구간을 종주 한다고 하는데 그 동기가 대단하다. California 사는 이모가 유방암으로 투병중인데
그치료비를 모으기 위해 Fund raising 을 목적으로 걷는다고 한다. 마일당 25센트를 기부 받는데 스폰서
가 계속 늘고 있단다. 건데 이친구 또렷한 한국말로 "언제나, 어디서나 안되면 되게하라 형님" 하는게
아닌가 ? 놀랠 노자 맞다. 그러면서 또 자기 아저씨가 해주더라며 어디서 본듯한 "Prepare the worst,
Hope the best" 란 말도 한다. 보기 보다 시근이 멀쩡하다. 저녁 먹고 맥주도 한캔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
도 했으니 세상에 편안하다. 잠자리에 들어 자고 있는데 앨러바마에서 김한선 박사(안과 전문의)가 도착
했다. 오후 3시 반에 출발해서 8시 30분이 다되어 도착 했으니 여간 정성이 아니다. 내일 부터는 셋이서
걷는다. 홍명씨 발톱을 칼로 조금 잘라냈다.


셋쨋날 : 난방이 잘 되는 실내에서 자고 났더니 몸이 개운하다. 아침먹고 배낭 꾸려 나서니 다른 팀들은
벌써 모두 떠났다. 모두들 일찍 자고 일찍 움직인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니 바람이 세다. 코를 계속 훌쩍
이니 귀찮다. 한참 걷다가 닥터 김이 "이렇게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나사가 조금씩 풀린 사람 들이다"
고 해서 웃었다. 돈벌이는 안하고 주중에 산 좋다고 일 팽개 쳐놓고 나온 사람들이니 별종 이란 얘기다.
홍명씨 발가락이 계속 아프다고 한다. 진통제로 버틴다.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아야 되는데.
물 마시려고 배낭을 내리는데 왼쪽 보조어깨 끈이 풀려 있지 않는가 ? 이것 때문에 유독 왼쪽 어깨가 그
렇게 아팠던 것이다. 끈을 조으고 나니 무게만 느껴 질 뿐 아프진 않다. 이걸 못 봐서 이틀 반을 고생 하다
니 어휴, 아깝다. Blue Mt. 으로 가는길 이 오르내림이 많다. 걸음도 약간 늦어져 shelter 에 도착하니
17:30 분 이다. 크기는 Gooch gap 만 한데 전망 이 끝낸다. 여기오니 다른사람 들은 모두 Maine 이 목표
란다. 조지아만 하고 끝나는 팀은 우리 뿐이다. 김홍명씨가 x팔린다고 우리도 Maine 간다고 하자 해서
또 웃는다. 저녁을 먹으려고 물을 받는데 영국에서 왔다는 친구가 얼굴이 하애져서 녹초가 되어 들어온다.
배낭 무게가 45 파운드라 너무 무겁단다. 누구는 21 파운드 배낭메고 날아 다니는데 누군 45 파운드를 메고 낑낑 대고 있으니. 어쩌랴 준비가 덜 된걸.


네쨋날 (3/13) : 아침에 일어나 슬리핑 백 안에서 일출을 바라보니 그림같다. 카메라를 꺼내 찍어둔다.
날씨가 많이 푸근해 졌다. 간단히 아침먹고 길을 나서니 몸이 한결 가벼워 진게 아닌가 ?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로가 누적되야 할텐데 오히려 몸이 가쁜해 지다니 놀랍다. 이래서 그 먼 산길(약
2170 마일/3520 kms) 을 걸어내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젠 Deep gap 하나 남았다.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좋고, 걷기도 좋다. 대개 처음 7시간 정도는 크게 힘들지 않고 걸을수 있다. 늘 마지막 2시간이
힘들다. 어깨도 아프고 발바닥은 화끈 거린다. 계속 묵묵히 걷는데 앞서가던 김홍명씨가 별안간 " 우리
도대체 왜 걷는거야 " 하고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걸으며 생각하니 정말 왜 걷는지 명쾌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나사가 약간 빠진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뿐. 하지만 제 싫으면 못 할터.
오늘 자고 나면 짐도 가벼워 질테고 내일만 걸으면 끝난다고 생각 하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 Deep gap
shelter 에 도착하니 16:15 분이다. 여기서 대단한 미국인 부부를 만났다. Anthony Movinsky 란 62세
된 일선 은퇴한 남자인데 부인과 함께 플로리다 최남단 Key west 에서 출발해 Maine 까지 올라 가는
중이라고 한다. 작년 12/29 출발해 2달반 걸려 이제 조지아 북단에 도착했으니 앞으로 몇달은 더가야
한다. 어쩌면 일년쯤 더가야 할지도 모른다. 예순 넘은 나이에 부부동반 대륙을 종단 하겠다고 나섰서니
대단한 각오다. 내일은 산아래 내려가 스테이크도 먹고 모텔에서 하루 쉬고 가겠단다.
오늘 밤은 홍명씨 코고는 소리가 훨씬 작아졌다. 내려가 샤워 했으면.


다섯째날 (3/14) : 오늘만 걸으면 집에 간다. Bly gap 으로 마중나올 조지아 산악회원 들과의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 했다. 발걸음이 가볍다. 점심때 김치도 먹을수 있고 내려가면 맥주도 마실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걸어진다. 3.5 마일 쯤 걸어 Dicks creek gap 으로 내려서니 젊은 친구가 자기차에
쥬스와 우유가 있는데 마시겠냐고 묻는다. 좋다고 땅바닥에 앉아 기다리니 아이스 박스를 갖고 와서 마시
고 싶은걸 마시란다. 갈증이 나던터라 크랜베리 쥬스 꽤 큰걸 다 마셨다. 돈을 줘야 하는건지 어쩔지 몰라
김한선 박사 한테 물어보니 돈을 주면 성의를 무시하는거니 주면 안된단다. 그러고 보니 뒤따라 오던 미국
친구들도 그냥 고마워 하면서 서슴없이 꺼내 마신다. 사연인 즉슨, 이 친구 작년에 Appalachian trail 전
구간을 4개월반에 해 치웠다고 한다. 엄청난 속도다. 그렇게 준비를 야물게 했던 마이클도 5 - 5.5 개월
예정 하던데, 대가 위에 도사가 그기 있었다. 키도 작고, 덩치도 적고 참 대단한 친구다. 일요일 아침에
음료수 챙겨와서 A.T. 종주 후배들 격려하러 나온것이다. 보기좋은 모습이다.
5.5 마일을 더 가면 Blue ridge gap 에서 산악 회원들을 만난다. 그기서 Bly gap 까지 같이 걸으면 83
마일 장정이 끝난다. Blue ridge gap 가까이 가니 회장님, 이사장님 여러 회원들이 우리를 마중하러
꺼꾸로 내려오고 있었다. 반갑다. 대단찮은 일에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시니 겸연 쩍고 고맙다.

기념 사진 찍고, Bly gap 올라가서 샴펜 터트리고, 불고기,김치, 찌개 먹고 싶던것 다 있다. 술도 몇잔하고
나니 끝난게 실감 난다. 뿌듯하고 기쁘다. 성원해 주신 조지아 산악회원 여러분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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