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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조난 산악인

앤디 김
2005.02.17 23:11 1,7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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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사람들을 산악인 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요?
두분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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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바스에 빠진 후배 1시간 사투 끝에 구조
히말라야서 기적생환 박정헌·최강식씨
추락 충격으로 갈비뼈 부러지면서도 버텨 손발가락 절단위기

[조선일보 신지은 기자]

히말라야 산맥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남서쪽 17㎞ 지점 촐라체(Cholatse·6440m)봉. 국내 최정상급 ‘거벽(巨壁) 등반가’ 박정헌(34)씨와 고향(경남 진주) 후배 산악인 최강식(25·경상대3년)씨가 365일 햇빛 한줌 들지않는 북벽(北壁) 얼음 기둥을 등정한 기쁨은 불과 4시간30분만에 지옥 같은 고통으로 변했다.

1월16일 오후 4시쯤(현지시각). 정상에서 1100m쯤 내려간 해발 5300m 지점에서 후배 최씨가 갑자기 눈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썩은 얼음’(등산용어로 녹은 얼음) 사이로 입을 벌리고 있던 깊이 50m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등반 전문가로서 발을 헛디딘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급경사에서 내려와 헬멧과 스크루 등 장비를 풀고, 서로를 연결한 자일만 남긴 상태였다.

얼음 벽에 온 몸이 부딪혔다. 1초나 지났을까? 길이 25m 자일이 팽팽하게 펴졌다. 1.5m 크기로 하늘이 몽롱하게 보였다. 호리병 같은 구멍이었다. 크레바스 20여m 밑에서 시체처럼 매달려 멍하게 5분….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꼭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치밀어 올랐다.

크레바스 밖. 앞서 가던 선배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몰아친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크레바스에 빠진 후배 하중(몸무게 75㎏)에 못이겨 크레바스를 향해 끌려가던 선배(몸무게 71㎏)는 경사면에 충돌해 왼쪽 갈비뼈 7·8번이 부러졌다. 정신을 수습했을 때 후배의 생명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자일의 옥죄임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만큼 고통이 밀려들었다.

자일을 잘라 나라도 살 것인가? ‘꼭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크레바스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히말라야에서 다리를 못쓰는 동료 산악인과 함께 있다는 것은 ‘사형 선고’나 같으니까. 침묵이 흘렀다.

“형님, 살려주이소~.”

크레바스 안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후배의 투박한 절규가 울려퍼졌다. “다리가 부러졌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크레바스를 2m 앞둔 경사면에 벌떡 일어선 선배는 남은 힘을 열 손가락에 쏟아부어 자일을 움켜쥐었다. 후배는 감각이 사라진 다리로 필사적으로 자일에 매달렸다. 배낭 속 등강기(올라갈 때 이용하는 등반 장비)를 이용해 한 뼘 한 뼘 크레바스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부러진 갈비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온 몸에 고통을 전했다. 그런 사투의 구조작업 1시간. 햇빛이 비치는 크레바스 바깥으로 후배 최씨의 머리가 나타났다. “살았다!” 말이 없던 선배 박씨는 후배의 몸을 바깥으로 끌어낸 뒤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지난 15일 서울 경희의료원 2508호실. 선배 박씨는 양손과 양발에 붕대를 두껍게 감고 있었다. 동상 후유증이다. 박씨는 18일 양손 엄지를 제외한 8개의 손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는다. 크레바스 위에서 후배의 자일을 쥔 손가락이다. 후배를 살린 대신 산악인으로서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후배 최씨는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잘라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최씨는 수술을 거부하고 고향 진주로 내려가 경상대 병원에서 손가락, 발가락이 썩지 않도록 하는 치료를 받고 있다.

<그들의 또다른 기사도 퍼 왔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히말라야 거벽등반가 박정헌씨(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와 최강식씨(경상대산악부)가 1월16일 네팔히말라야의 촐라체(6,440m) 북벽 등반을 마친 뒤 실종 닷새만인 21일 오전 해발 4,500m 높이의 야크 움막에서 발견됐다.

박정헌씨의 실종 소식을 연락받은 이상배씨의 말에 의하면, 18일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카트만두의 헬리콥터 에이전시에 구조를 요청했으나, 폭설에 이은 악천후로 수색이 이루어진 것은 사흘 뒤인 21일이었다. 발견 당시 두 사람은 야크 움막에서 폭설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산도중 추락 충격으로 박정헌씨는 갈비뼈에 금이 가고 손가락 동상이 심한 상태였고, 최강식씨는 그보다 더해 다리뼈 골절에 손발 동상이 매우 심한 상태였다.

21일 오전 카트만두로 후송된 두 사람은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심각해 급히 귀국길에 올라 23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 도착, 경희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박정헌씨는 촐라체 북벽 등반의 관건이 무게에 있다고 판단, 출국 전 5mm에 불과하지만 강도 1,800kg을 넘는 로프를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알파인 등반에 필요한 식량도 특별히 준비했다. 또한 하켄 15개, 스크류 7개, 캠장비 5개가 등반장비의 전부였다.

그러나 12월24일 출국한 두 사람은 캐러밴 도중 장비의 부족함을 느끼고 1월2일 경남연맹팀 베이스캠프를 찾아가 일부 장비를 보충해 촐라체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고소적응과 루트파인딩을 끝낸 다음 북벽 등에 나선 것은 16일 새벽 3시. 두 사람은 계획대로 속공등반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장비 외에는 지니지 않았고, 당일에 끝내고 다시 베이스캠프까지 돌아올 생각에 식량도 행동식 하루치 외에는 지니지 않은 상태였다.

베이스캠프에서 지켜보던 한국인 송 모씨는 두 사람이 정상에 올라가는 것은 보았으나. 무전기 배터리가 떨어져 교신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틀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송씨는 등반 3일째 되던 18일 오전 경남연맹대의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에 국제전화로 이 사실을 전했고, 이상배 대장은 카트만두의 헬기 사무실에 연락, 구조헬기를 띄웠던 것이다.

박정헌씨는 초오유(8,201m), 낭가파르밧(8,125m), 94년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 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 2000년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 2002년 시샤팡마 남벽 신루트 등반으로 이어지는 히말라야 거벽등반가로, 지난 해 여름에는 가셔브룸2봉(8,035m)을 남들이 거의 가지 않는 남남동릉으로 등정한 후 마지막 캠프(7,400m)에서 2,000여m 아래의 베이스캠프까지 패러글라이딩으로 활강하는 익스트림 모험을 펼쳐 베이스캠프에 머물던 외국 산악인들에게도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최강식씨 또한 지난 해 봄 로체(8,516m)에 이어 여름에 가셔브룸2봉을 등정, 기대를 모으고 있는 산악인이다.

출국 전 박정헌 대장은 “북벽은 한국산악회가 시도했던 좌측 리지의 우측 스노라인을 따라 등반할 계획인데, 동계시즌이라 빙벽과 바위로 뒤섞여 있을 것으로 보고, 벽 상태에 따라 서벽 계곡에 위치한 좌측 중앙벽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동계 시즌인지라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비박과 혼합등반이 이번 원정의 과제라 생각한다”고 원정에 임하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이만호: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사자가 자주 출몰하는 아프리카 정글을 여행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신발끈을 단단히 매는것을 보며 동료친구가 말했다. "야 신발끈 매고 아무리 빠르게 뛴다해도 사자보다 빠를 수는 없잖아"하였더니 친구가 대답했다. "사자보다 빠를 필요는 없어, 너 보다 빠르기만 하면 나는 살 수 있어" 산 아래 사람들의 정글법칙 우정이다. -[02/17-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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