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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적은 행복들

이만호
2004.03.12 10:10 1,129 0

본문

등산을 무상無償의 행위라 한다. 보상을 전제한 품팔이가 아니기에 조건 없는 사랑이 근간이다. 사랑은 행복의 원천이다. 행복은 아름다움과 자유스러움에 서도 비롯된다. 돈이나 권력과 무관한 아름다움과 자유가 산에 있다. 그 아름다움과 자유가 빗어내는 기쁨과 환희는 오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다. 등산은 힘들다. 땀 흘려 올라야 만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등산에 즐거움이 없다면 중노동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르면 성취 감이 없다. 비상하는 새의 시야처럼 눈 아래 경치만 있지 감동이 없다. 산에선 고통의 강도와 희열의 농도는 비례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오름의 고통이 여과된 아름다운 기억은 오래 간다. 산악인들은 산에서 극복한 고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새기는 연금술을 안다. 논리적으로 모순된 고통과 환희를 삶 속에 용해 시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이 산악인들이다.
인생살이도 등산과 같다. 인생살이는 첫 발짝부터 울음으로 탄생을 알린다. 사람은 슬퍼도 울음이 나오고 기뻐도 눈물이 나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울면서 밤을 지새울 수는 있어도 웃음으로 밤을 새울 수는 없다. 인생이란 어차피 그렇게 예정되어 있다. 행복이라는 나무가 있으면 반드시 불행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사람에 따라 그림자가 나무보다 더 짙고 클 수도 있다. 이것을 종교에선 원죄라 하기도 하고 업보라 하기도 한다. 그것을 사랑이나 자비로 환치하려고 날마다 기도하고 수행한다. 기도나 수행을 구원이나 깨우침으로 이해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의 추구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길 원하지만 행복 만들기에 서툴다. 행복에 대한 기도나 수행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하루 24시간 행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행복은 크고 거창한데서 오는 줄 착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작고 적은 것, 일상적이고 사소한곳에 있다. 나도 산에서 정상만을 보고 돌격 앞으로 할 때는 산아래 알콩달콩 어우러져 핀 들꽃이나 재잘거리는 냇물의 살뜰한 아름다움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산의 높이만 보았지 산의 깊이는 무시하였다. 등산을 흡사 군사작전 수행하듯 하였다. 그리하니 산소가 희박한 고산에서 동사 직전의 초 죽음을 몇 번 체험하였다. 빗자루로 후려치듯 한, 칼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동짓달 개 떨 듯 밤을 새우고, 뇌를 절제 당한 원숭이처럼 비틀거리다 생환하면 맑은 공기, 크게 쉬는 심호흡, 물 한 모금, 마른 잠자리조차 나의 행복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처럼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줄은 몰랐다. 행복은 햇살처럼 모양도 소리도 빛깔도 없이 늘상 우리와 함께 있다. 다만 밝음이 다하면 어둠이 오듯이, 흐린 날씨가 개이듯이 행복과 불행은 번갈아 온다. 인생에서 언제나 맑은 날, 바람 없는 날들만 계속되지는 않는다. 청명한 날만 계속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이다. 비가 와야 땅이 젖고 흙이 부드러워 진다. 태풍이 불어야 바다가 산다. 그러나 태풍은 그 세력만큼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혹독한 겨울이 있어서 봄 꽃이 더욱 아름답다. 서리 맞은 감이 달고 추위를 겪어야 꽃의 향기가 더 난다. 행복은 눈물로 물주며 키우는 꽃이다.

모든 변화엔 깨쳐야 깨우치는 고통이 따른다. 산 위에서 온갖 풍상에 시달려 비틀린 나무를 보면 자연의 예술이라 하지만 나무가 당한 시련을 자기가 겪으면 불행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통과 아픔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 불행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것들과 만나야 비로소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는다. 나는 이 글을 정말 힘들게 썼다. 3일전 캘리포니아의 맘모스 스키장에서 넘어졌을 때 오른쪽 갈비뼈에 금이 갔다. 웃지도 재채기도 못하고 코도 못 푼다. 진통제를 복용하여 통증은 줄었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지금 생각엔 갈비뼈가 원상대로 회복되면 나는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갈비뼈가 성했을 때, 왜 그 행복을 못 누렸을까? 지금 내가 금이 간 갈비뼈로 조깅을 하면 기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몸이 회복되어 뜀박질을 할 수 있다면 그때도 기적 같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토록 자유를 소망하던 감옥의 죄수가 석방되어 자유가 일상화되면 소망이 욕망으로 변한다. 그를 묶던 쇠줄이 끊기면 금줄에 다시 얽매인다. 행복은 미래에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현재다. 그래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비록 아프지만 내일 날 밝으면 탱탱하게 물 오른 가지와 잎눈 꽃눈에서 연둣빛 새싹이 돋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자는 것도 행복이겠지. 아마 어머니의 소녀적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웃음이 나올 꺼야. 그것도 행복이지…이렇게 우리와 함께하는 작고 적은 행복이 지속되는 것이 큰 행복 아니겠어요?(코아라이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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