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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Ringwanderung)

이만호
2004.05.12 09:07 1,8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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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조난용어 중에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라는 말이 있다. 이 독일어를 동양 산악인들은 환상방황(環狀彷徨)이 라 부른다. 등산자가 안개나 폭우, 폭설, 피로 등으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 보면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의 몸이 좌우 대칭이 똑같은 것 같아도 장기의 무게나 좌우의 신체 발육상태가 달라, 똑바로 일직선상을 걷거나 뛴다 생각하여도 간이나 심장 등 무거운 쪽으로 그리고 다리의 길이가 짧은 쪽으로 원을 그리며 크게 돈다는 것이다. 육상이나 빙상경기의 트랙은 항상 왼편으로 돌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좌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감옥을 탈출한 죄수가 밤새도록 멀리 뛰었으나 이튿날 아침 감옥근처에서 잡히는 것도 환상방황을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욕구 중에서 가장 업그레드 된 것이 자아실현 이다. 자아실현은 자기의 가능성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실현시키는, 즉 나 자신에 의해 형성될 소망이고 존재다. 따라서 내가 나로 서 존재하여야 하는 주체성을 발견하여 성장시키는 고독한 수행이 삶의 과정이고 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두가 돈을 벌어야 한다. 이 사회에선 가난은 무능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많은 돈을 번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러나 성공은 행복지수와 비례하지 않음을 많이 본다. 사업은 성공하였지만 가정 깨 저, 친구 잃어 건강 나빠져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나도 한때 돈 돈 돈을 찬미하는 강력한 메시지에 씌워 정신없이 뛰던 때가 있었다. 매사에 도전적으로 대하니 활기가 넘친 것 같았으나 늘 허기진 짐승이었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 나는 돈을 왜 버는가? 얼마큼 벌어야 만족스러울까? 돈이 행복한 삶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까?라는 물음에 날 밤 새운 적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란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힘과 마력이 있었다. 돈 벌어서 집도 사고 차도 샀다. 술도 마셨다. 그런데 삶이 돈으로 노동으로 채워질수록 자아실현이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아실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스러움인데 그 자유를 돈으로 살 수가 없었다. 자유는 시간적인 여유로움에 서 비롯한다. 사람 모두가 다 같은 액수의 돈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양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돈이 유형 재산이면 시간은 무형 재산이다. 자아실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돈을 더 움켜지기 위하여선 나의 시간을 더 팔아야 했다. 비로소 좋은 집 비싼 차 때문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미련스러워 보였다. 물론 절대빈곤상태서 자아실현은 개나발에 불과하다. 세속을 초월한 방외거사가 아닌 바에야 무소유철학을 실천하기도 어렵다. 돈이냐 시간이냐는 꽃에 햇볕이 더 좋으냐 수분이 더 좋으냐는 따짐과 같다. 꽃에는 어느 하나가 아니라 햇볕과 수분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햇볕과 수분 중에서 어느 한쪽이 넘치치거나 부족하면 꽃은 죽는다. 시간과 돈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나는 먼저 마음이 가난하여 지기로 하였다. 돈으로 소유하는 것의 모든 것을 최소 최저로 낮추었다. 애들도 없어 더욱 커 보이는 집을 팔고 작은 콘도미니엄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소득이 줄더라도 내 시간을 늘리기로 하였다. 이미 자동차는 싼 차를 구입하였으나 치질 걸리지 않고 잘 타고 다닌다. 얼마 전 서울서 온 손님들이 미국까지 와서 현대차 타느냐며 뒤따라 온 궁전밴에 모두 타서 무안한적이 있었다. 궁전밴의 친구가 인격수준에 맞게 차격(?)도 높이라는 핀잔을, 내가 뭐 그 사람들 가이드하러 미국 왔냐며 웃긴 하였지만 쪽 팔린 사건이었다. 그런 창피에 초연하여야 마음이 가난한자에게 약속된 복과 천국을 누릴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며칠 전 만난 궁전밴 친구가 요즘같이 개솔린값이 계속 오르면 궁전밴 굴리기가 장난이 아니라며 내차를 오히려 부러워했다. 불경기로 희망은 가물거리고 불안은 칼날처럼 또렷해 잠을 설친단다. 경제가 어찌 하였던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나는 더 이상 돈을 보고 뛰지 않기로 하였다. 무능한자의 변명 같지만 남과 비교하여 생기는 상대적 빈곤을 줄이기 위하여 경쟁이라는 것을 아예 포기하였다. 경쟁은 어차피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만든다. 끝없는 문명의 발달과 찬란한 경제성장도 행복으로 위장한 신기루일 뿐이다. 소수의 천재들이 주도하는 문명의 고속열차에서도 내려 거꾸로 가고 싶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남고 처짐 없는 오롯한 삶을 계획하고 싶다.

우리는 보다 잘 살기 위하여 이땅에 이민 왔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는 잘 사는 것이 잘 먹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배터지게 먹질 못한다. 잘 먹는 것이 못 먹는 것보다 해롭다. 덜 먹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가치관은 변한다. 제행무상 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는 자연의 섭리다. 사랑도 젊음도 잃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사고방식도 바뀌고 있다. 보릿고개 세대는 잘 먹는 것이 꿈이었다면 그 후 세대는 잘 싸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 잘 먹고 잘 싸니 잘 자는 것, 쾌식 쾌변 쾌면이 신체의 기본 욕구로 자리 매김되었다.

지금 세계적으로 웰빙(Well-being) 열풍이 불고 있다. Well(잘) being(지내기)은 바쁜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며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생활운동이 한국의 상업성과 맞물려 고급스레 잘 먹고 잘살기 웰빙으로 게걸스럽게 변질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종교던 사상이던 일단 받아 들이면 종주국 보다 더한 교조주의로 흐른다. 웰빙족 이전에 미국서 시작되었던 숨가쁜 삶의 속도를 늦추려는 슬로비족(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천천히 그러나 보다 낫게 일하는 사람) 현상은 빨리 빨리 민족적 정서에 맞지 않았는지 한국엔 상륙하지 않았다. 최근엔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돈도 명예도 팽개치고 느긋한 인생을 즐기겠다는 다운쉬프트(Downshift)족이 있다 한다. 스트레스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고액연봉이나 화려한 문화혜택을 마다하고 시골로 내려가 나만의 생활을 추구한단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삶에서 적게 벌더라도 가족과 친구들을 소중히 하는 인간적인 삶을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목사에게 부처같이 살라는 주문처럼 모욕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이쯤에서 왜 사는가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가져 볼 시점이다. 지금 미국에선 못 먹어 못 벌어 못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살 줄 몰라 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동차에 얼라이먼트(Alignment)를 하여 주지않으면 차 바퀴가 비정상적으로 닳는다. 우리의 삶도 자주 얼라인먼트 하여 주지 않으면 링반데룽 같은 카오스가 생긴다. 오직 전진과 소유만이 있고 멈춤과 관조가 없으면 링반데룽에 빠지기 쉽다. 우리 잠시 멈추어 지도와 나침반을 맞추며 삶의 얼라이먼트를 하여 봅시다.



Gaang C: 잘 산다는 곧 행복 하다 일것이다.그러나 돈으로 행복을 살 (Buying)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돈이 없이는 행복 할수가 없음이니 이또한 모순이 아니런가... -[05/11-18:47]-

Gaang C: 어차피 태어난 세상의 허구많은 사람들이 죄다 같은 방식으로 살라는 법도 없을진대 하물며 한배에서 난 형제도 요롱이 조롱이 라 하던데 많고먾은 그많은사람들의 가치관을 어찌 일률적으로 보편화 시킬수가 있겠으며 따라서 강요할수도 없는 영원한 난제가 아닌가 하여라 고로 세상 만사 요지경이라 하잖튼가. 그래서 다들 저마다 타고난 팔자대로 깜라 -[05/11-19:23]-

Gaang C: "위에서 계속" 깜라가 아이라 깜량껏 살다가 제 명껏 천수를 누리다 요절 하므로 개개인의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정한 이치 이거늘 거저 사는동안 나아닌 남에게 불편 아니끼치고 있지만 없는듯 교만하지아니하고 궁색 떨지 말며 만수산 드렁칙이 얽혀진듯 어우러져 살다 가는 그런 인생이었으면 이에 더 무얼 바라리이까..... -[05/11-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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