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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방위

앤디 김
2006.07.30 12:18 9,9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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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19)] 지도와 방위

16세기 지동설 이후 자전축 기준 방위개념 인식

지도 독도법에서 현재위치 파악과 방향 찾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산속에서 방향을 착각하거나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면 길을 잃기 십상이고, 자칫 조난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크다. 미국 플로리다 남쪽 카리브해에 널려 있는 섬들을 서인도제도라 부르게 된 것도 방향과 위치를 착각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쪽으로만 가면 동양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1492년 바하마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끝내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 굳게 믿고 있었다.

‘어떤 방향의 위치’를 이르는 방위(方位)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공간인식의 한 형태로 인류 역사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지식으로 인식되었으며, 인간의 삶과도 깊은 관련을 가진 상징적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몰랐을 때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자연현상으로 방위를 인식했으나, 16세기 말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 이후 지구 자전축을 기준으로 한 명확한 방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지구는 세차운동(歲差運動)에 의해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의 수직방향에서 23.5° 기울어진 상태로 하루에 한 바퀴씩 서에서 동으로 자전한다. 이 자전축이 지표와 만나는 두 점이 북극과 남극이다. 자전축을 북쪽 방향으로 계속 연장하면 하늘과 만나는 점이 가상적인 천구(天球)의 북극이 되고, 여기에 위치한 별이 지구상에서 북쪽의 기준을 삼는 북극성이다.

북극과 남극을 연결한 지표면 상 가상의 선을 자오선 또는 경선이라 하는데, 이 경선에 의해 남북 방향이 정해지고, 경선과 직교하는 위선의 양쪽으로 동서 방향이 정해진다. 그러나 지표상이라도 북극과 남극의 정점에서는 북과 남의 방향만 존재하고 동서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과 같은 구체는 정점도 없고 기준도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상에서의 방위는 자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지도학에서 정의하는 방위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구 상의 한 점 A를 지나는 경선을 기준으로 하여 측정한 다른 점 B의 방향 즉 북을 기준으로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시계 방향으로 잰 각도를 말한다. 이 각도를 방위각이라 하고 방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지구의를 놓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A점과 B점이 같은 위도 상에 위치해도 방위각이 90°가 되거나 270°가 되지 않는다. 다만 적도 상에서만 A점과 B점이 같은 위도 상에 있으면 방위각이 90°와 270°가 될 수 있다.

위의 A점과 B점을 잇는 선을 연장하게 되면 지구를 감싸는 큰 원을 이루게 되는데 이 원을 대원(大圓)이라 한다. 이때 두 지점을 연결한 선은 지구상에서 최단 거리가 되고, 이를 대권(大圈)루트라 하여 지구상에서 이동할 때 가장 경제적인 경로로 이용된다. 그러나 대권루트를 따라 진행하려면 방위각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방위각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방위각을 수정하지 않고도 항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지도가 메르카토르도법 세계지도다.

이 지도는 모든 경선과 위선이 직각으로 교차하기 때문에 극지방으로 갈수록 면적과 거리는 점점 왜곡이 커지나 두 지점을 잇는 직선은 경선과 이루는 각이 일정하기 때문에 각을 수정하지 않고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 선을 항정선(航程線)이라 하나 대권루트와 같이 최단 거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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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북쪽을 위로 하여 제작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으나 지도의 위쪽을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긴 하지만 지구상에서 방위의 개념이 존재하는 이상 북쪽을 위로 두고 지도를 제작하는 것이 여러 모로 사용하기 편리하다. 13세기경 제작된 마파문디(mappa mundi)라고 하는 세계지도를 봐도 지상의 낙원으로 상상했던 동양(orient)을 지도의 상단에 그려놓고 있다. 독도법에서 진행방향을 정하고 현재 위치를 찾기 위해 지도를 정치(正置)하는 것을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방위에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한 진방위와 나침반이 가리키는 자침방위, 지도상의 직각좌표에 의한 방안방위가 있고, 진방위의 북을 진북, 자침방위의 북을 자북, 방안방위의 북을 도북이라 한다. 방위의 표시는 동서남북 4방위를 기준으로 그 중간 방위를 합쳐 8방위, 이를 다시 등분하여 16방위, 32방위로 세분한다. 방위각은 도(度 degree) 단위를 사용하고, 북쪽은 0° 또는 360°, 동쪽은 90°, 남쪽은 180°, 서쪽은 270°로 구분하고, 이를 세분하여 표시한다.

방위는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원칙이나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음양오행이나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주역의 팔괘 등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인생의 진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법을 감정하는 데도 쓰여지고 있다. 중국 전한시대에 편찬된 회남자(淮南子)의 천문훈(天文訓)에 보면, 방위는 동서남북 외에 중앙을 방위로 삼아 오방으로 설정되었다고 했다.

이 5방위는 각각 오행과 오색으로 비교해 정의하는데, 북쪽은 오행 가운데 수(水)에 상응하며 색깔은 검은색이고 음이며, 남쪽은 화(火)이며 붉은 색이고 양이며, 동쪽은 목(木)이며 청색이고 양이며, 서쪽은 금(金)이며 흰 색이고 음이며, 중앙은 토(土)이며 황색이라 하였다. 이 같이 방위에 음양과 오행을 배정하여 체계를 세운 음양오행의 논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문화권에서 우주인식과 사상체계의 중심 원리로 받아들여져 동양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전통적 지리이론인 풍수지리도 산?수?방위?사람의 네 요소를 조합하여 구성하고 음향오행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인데, 명당을 찾는 원리 중 하나인 좌향론(坐向論)이 바로 방위와 관련된 지기의 여러 측면을 살피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24방위가 주역의 팔괘와 십간십이지를 사용해 각 방위의 간격을 15°씩 등분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고, 이러한 방위와 풍수이론을 각 층에 담아 만든 것이 풍수지리에 쓰이는 패철(佩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풍수사상은 멀리 삼국시대로부터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민속신앙에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방위를 몰라도 일상생활에서는 큰 불편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 탐험과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역사를 통해 방위 지식은 필수가 되었고, 위치를 수반하는 정보가 날로 격증하고 있는 현대에도 방위는 가일층 중요한 지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자연인 산을 대상으로 하는 등산에서, 더구나 숲이 우거지고 기상 돌변이 빈번한 여름철 산행에서 현재 위치나 목적지 파악을 위해 방위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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